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는듯한 느낌 속에 지난 6일을 되돌이 본다. 서울에서 무려 7시간 비행기를 타고 오는 시간들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기내식으로 나온 비빔밥, 피자, 삼각김밥을 가족 모두가 맛나게 먹었다. 네팔 공항에서의 두 시간 가량 지체된 시간들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마중을 나온 엄마와 40일만에 재회, 그리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빠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가슴 한구석 왠지 모를 불안감이 사라지고 평안해졌다. 그런데 지난 네팔 대지진으로 친정집이 무너지고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인근에 달세를 사는 부모님의 처지는 한국에서 10년 동안 이미 길들여진 나의 눈엔 다소 안타깝게 보였다. 아니 불편함이 많았다. 물이 귀해서 아침에 받아 두었던 물로 씻고 밥하고, 빨래는 형편이 될 때 해야 하고 목욕은 약간의 사치스러운, 한국물 먹은 티 내는 꼴이 되어버린... 무엇보다 흙먼지가 많아서 하루만 지나 청소를 하면 방안에 쓰레받기로 반은 흙이다. 2일째 집안 대청소를 끝내고 가까이 살고 있는 언니집에 가니 동생 가족이 왔다고 네팔식 닭볶음과 쌀밥을 주는데 밥맛이 부모님 집보다 맛있다. 그러나 남편은 한국과 너무 다른 밥맛에 입맛이 없는지 네팔 도착이후 계속 평소 식사량의 반도 채우질 못한다. 언니 집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언니가족과 열무부족 축제장에 가니 카트만두 인근 모든 열무부족은 다 온듯하다. 반가운 얼굴들 반기는 사람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도하고 전통공연 구경도하며 또 하루가 훌쩍 지나가고~ 다음날엔 넷째오빠네와 큰집에 인사를 다녀왔다. 마침 부족 결혼식이 있어 남자들은 모두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며칠 후 시골 축제장에 간다는 소식에 언니네와 엄마, 우리도 축제장에 가기로 했다. 몇 년 만에 가보게 될 나고 자란 진짜 고향 시긴째! 지진으로 집이 무너지기 전에 부모님도 살던 곳. 큰오빠 엄마동생 보모 그리고 큰집과 많은 친척들과 언니시댁도 시긴째에 살고 있다. 드디어 출발 아침. 차를 빌리고 짐을 싣고 정신이 없다. 이동 시간은 대략 4시간. 한국에서 가져온 램프와 타올, 옷, 칼 등의 선물과 현지에서 구입한 라면5박스, 음료 몇 박스를 싣고 타고 갈 사람을 체크하니 사람이 제법 많다. 총 9명. 시내를 벗어나고 높은 산 하나를 넘는데 비포장길 산등성이를 타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린다. 까마득한 절벽과 아찔한 고불길 아래 수많은 다락논들이 보이고 저 멀리 높은 곳엔 눈 덮인 히말라야 산이 보인다. 남편은 휴대폰 카메라로 연신 사진을 찍으면서 이곳 다락논이야말로 세계문화유산감이다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네팔 음식을 싫어하지 않고 네팔 다락논을 칭찬하는 남편. 불과 70킬로미터 떨어진 거리를 4시간 넘게 덜컹대며 달려야하는 시골길. 산 하나를 넘고 나니 또 하나의 산을 2시간동안 올라 겨우 도착한 언니 시댁. 지진 피해로 온 동네 집이 무너지고 임시 거처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에 지난 지진피해를 실감하게 된다. 6일간의 축제기간 중 2일간 이곳에서 신세지고 내려가는 길에 고향집을 둘러보고 큰오빠 고모집 등에 인사드린 후 다시 카트만두로 돌아갈 예정인데 이곳은 카트만두와 달리 해발2000고지 산악지대답게 낮인데도 너무 춥다. 밤이면 더욱 추울 텐데 난로 난방이 안 되고 창문마저 비닐이 낡아 찢어진 탓에 걱정이 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일곱살 아들과 세살 딸이 특별히 아픈 곳 없이 잘 견뎌주고 있다. 계속 별탈없으면 좋겠다. 네팔에서의 행복한 추억 쌓기는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오지와도 같은 불편함은 또 언제 찾게될지 모를 귀한 추억이 될 것이다. 네팔에서 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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