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는 ‘엄천강은 살아있다’다. 제목을 보고 지리산농부가 엄천강에서 송어만한 꺽지를 잡아먹은 이야기라도 하려고 그러나? 또는 엄천강에 수달이 살고 있다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나? 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미리 말하는데, 이건 전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이야기는 지리산의 젖줄인 엄천강에 숨어있던 보물을 백년 만에 발견했다는 이야기다. 사실 오늘 이야기 제목은 엄천강의 숨은 보물 ‘화산12곡’으로 하려고 했는데, 문득 수년 전에 재밌게 보았던 ‘박물관은 살아있다’라는 영화가 떠올라 패러디해 보았다. 나는 지금 3탄까지 시리즈로 나와 흥행에 성공한 ‘박물관은 살아있다’에 나오는 영화같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화산12곡‘은 구한말 엄천골 문정마을에 살았던 선비 강용하가 엄천강의 비경 12곳을 서술하고 노래한 문집에 나오는 것인데, 국립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는 것을 부산에 사는 재야 한문학자 이재구 선생이 발굴하여 일년 이상 현장 답사와 고증을 거쳐 최근에 일련의 논문같은 답사기를 완성하였다. 강용하의 문집 화산12곡이 엄천강의 구약이라면 이재구 선생의 화산12곡 답사기는 엄천강의 신약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둘 다 문학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이다. 이재구 선생의 엄천강 신약을 읽고 나서 (엄천강에 이렇게 많은 명승이 있는 것을 나는 왜 몰랐을까?) (엄천강에 이렇게 많은 문화 유적이 있는 것을 나는 왜 몰랐을까?) (내가 이러려고 엄천골로 귀농했던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음을 고백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가족 여행 차 엄천골을 지나다가 그 수려한 경치에 반해서 강이 내려다보이는 마을에 집을 짓고 산지도 어언 15년이 흘렀다. 나는 여태 엄천강이 아름다운 강이라고만 생각했고, 엄천골이 사람이 살만한 곳이라고만 생각했지, 화산12곡에 서술된 것처럼 문화유적이 차고 넘치는 곳인지 몰랐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매일 아침에 눈뜨면 보는 엄천강 바위에 이렇게 많은 각자가 새겨져 있는지 꿈에도 생각 못했으니 나는 참으로 눈뜬 봉사였던 것이다.
엄천강은 휴천 용유담에서 유림 손곡까지 지리산과 법화산 사이를 굽이쳐 흐르고 그 다음은 경호강으로 이름을 바꾸어 흐른다. ‘화산12곡‘의 화산은 법화산을 말하는데, 화산을 끼고 흐르는 엄천강의 열두 비경을 소개해 보면,
화산 제1곡 용유담, 제2곡 수잠탄, 제3곡 병담, 제4곡 와룡대, 제5곡 양화대, 재6곡 오서, 제7곡 한남진, 제8곡 독립정, 제9곡 사량포, 제10곡 칠리탄, 제11곡 우계도, 제12곡 함허정
화산12곡 중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제1곡 용유담 정도, 그리고 제4곡 와룡대와 제5곡 양화대가 그나마 엄천골 주민들이 눈 여겨 보던 명승이다, 그런데 사실은 엄천강의 명승 또는 문화유적이라고 자랑할 할 만한 보물이 모두 열두 곳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면 엄천강 경치 좋은 바위에는 어김없이 옛날 사람들이 남겨놓은 각자가 있다. 용유대, 세신대, 독조대, 양화대, 부춘정, 동강대...... 같은 각자와 점필재, 일두, 남명, 강용하 같이 이름이나 호를 새겨놓은 각자가 있는데, 이런 각자 하나하나가 모두 옛날 역사서와 문집에 나오는 글의 GPS 인 것이다. 이제 우리 엄천골에 <화산12곡 답사길>이 만들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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