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를 넘긴 논은 개구리 세상이다. 봄비가 논고랑에 웅덩이를 만들자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들이 웅덩이에서 물장구를 치며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로 세레나데를 부르고 난리법석이다. “아르러르러러 아르러르러르 아러어러어러럴까르러르” 요즘 암 개구리는 노래잘하는 수 개구리를 좋아해서 수 개구리들은 저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노래하는데 요즘 인기 있는 팬텀싱어나 서바이벌 오디션에 출연하는 가수보다 더 열정적으로 노래한다. 한마디로 죽기 살기로 부르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부른 노래에 대한 평가가 아주 엄격하기 때문이다. 암 개구리는 노래 잘하는(목소리 큰) 수 개구리만 골라 등에 업고 다닌다. 논 웅덩이에서 개구리들의 노래 경연이 한창일 때, 엄천골 운서마을 사람들은 용우씨네 황토방에 모여 고로쇠 첫물을 마신다. 운서마을 외딴집 주인장 용우씨는 이날을 위해 이틀 전부터 황토방에 불을 넣어두었다. 서너 명이 자면 딱 좋을 조그만 방에 마을사람 열대여섯 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엉덩이를 찌지며 시끌벅적 고로쇠 수액을 마신다. 아랫목은 메주 콩 삶는 솥뚜껑처럼 뜨거워서 십초 이상 앉아있기 힘든데 방이 비좁은 관계로 공평하게 돌아가면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찌지는 벌을 받는다. 용우씨의 황토방은 한번 불을 넣으면 그 온기가 상당기간 지속이 되어 마을 사람들은 칠불사의 아자방 안 부럽다고들 칭찬한다. 뜨거운 방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차가운 수액으로 식히기라도 하려는 듯 사람들은 고로쇠를 벌컥벌컥 마시며 농사 이야기로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말끝에 중단된 마을 우회도록 공사 이야기가 나왔다. 이야기는 지난 해 마을 사업으로 공사를 하다가 마무리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유감과 성토로 이어졌다. 여러 사람의 땅을 무상으로 희사 받아 길을 포장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본인의 땅이 한 때기도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좋은 해결 방안들을 내어 놓는데, 피 같은 내 땅을 내어 놓아야 할 사람들의 생각은 또 다르다. 내 땅이 안 들어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테너 가수처럼 우렁차고 활력이 넘치고, 내 땅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피아니시모로 잦아든다. 기가 막히게 좋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보니 방안의 열기는 자꾸 달아올라 고로쇠 한 말이 순식간에 동이 나 버렸다. 엉덩이가 뜨겁다고 한 그릇 마시고,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열이 나서 또 한 그릇 마시고... 고로쇠 한말이 거짓말처럼 빨리 동이 나고 용우씨가 한 말 더 가지고 왔다. 물론 엄천골 고로쇠 물맛이 다른 지역 것보다 더 달고 시원한 탓도 있겠지만 뜨거운 방 안에서 시끌벅적 말들이 오가다보니 새로 가져온 한 말도 바로 동이 나 버렸다. 사람들은 “고로쇠는 이제부터야~” 하고는 저마다 고로쇠 많이 마신다고 떠벌리는데, 종대 행님이 혼자서 하루에 한 말을 마신다고 하니 노인회장님은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내는 혼자 앉은 자리에서 한 말을 마신다”고 받아치신다.(뻥을 치신다.) 다행히 고로쇠 수액은 한꺼번에 많이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는 거라, 비울 것을 비우느라 차례차례 뒷간에 다녀오는 동안 세 번째 말 통이 또 들어왔다. 봄비에 겨울잠을 깬 엄천골 개구리들이 논 웅덩이에서 목청을 돋워가며 노래 부르고, 엄천골 농부들이 황토방에서 고로쇠 마셔가며 큰소리 땅땅치는 동안, 냉이가 딱 먹기 좋게 올라왔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