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를 넘긴 오래된 기계들이 힘차게 돌아간다. 그 속에서 보송보송 목화솜이 따뜻한 온기를 머금는다. 목화장인 임채장(67) 칠성면업사 대표의 솜 공장에서는 추운 겨울 하얀 목화솜이 온기를 전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목화를 직접 재배해 목화솜을 만들고, 이를 온기 가득한 침구류로 만들어내는 임채장 대표. 수십 년 그의 손을 거쳐 간 목화솜은 가난한 이들에게는 따뜻한 온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되었다.
임채장 대표는 전국적으로 유명인이다. 매년 7~8회 정도는 전국방송에 그가 나올 정도로 단골이기도 하다. 지난 1984년 처음 시작한 솜 공장은 그렇게 그를 ‘목화장인’으로 만들었다.
“당시에는 목화가 사양 산업이었어요. 60~70년대에는 집집마다 목화를 심었을 정도로 어디서나 볼 수 있었지만 80년대 접어들어 값싸고 가벼운 화학제품이 들어오면서 목화의 몰락이 시작됐지요.” 불과 30여년 만에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목화. 목화명인 임채장 대표는 사라져가는 목화를 끝내 놓지 못하고 직접 재배해 자신의 솜 공장에서 솜을 타고 이불을 만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목화 장인이다. 그가 제2의 문익점이라 불리는 이유기이도 하다.
“동물성인 오리털이나 거위털에 비해 목화는 식물에서 생산된 것으로 가장 사람에게 무해합니다. 특히 신생아에게는 더없이 좋은 것이 목화입니다” 목화솜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임 대표는 직접 재배해 제품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1년 동안 수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5월에 목화씨를 심어 10월 아름다운 꽃이 피고, 보름 정도 지나면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면서 목화가 만들어진다. 이후 서리가 오기 전 수확해야 최상품의 솜을 만들 수 있다.
그는 매년 상림공원내 경관지구에 1000평, 함양읍 신관리에 1000평 등 2000평에 목화를 재배해 2톤 가량의 솜을 만든다. 또 부족한 부분은 전국의 경관지구에서 심었던 목화를 수확해 가져온다. 그는 1년에 4~5톤 가량의 목화를 사용한다. 이불 1채를 만드는데 3kg 정도의 목화솜이 사용된다.
지난 설 명절 연휴 마지막날 전국방송을 탄 이후 끊임없이 주문전화가 걸려올 정도로 다시 한 번 유명세를 타고 있다. 손님 응대하고, 목화솜을 만들고, 침구 제작까지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 임채장 대표. “방송에 한번 나가면 한 달 간은 꾸준하게 손님들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솜이불가게에서는 연신 전화주문과 문의를 받던 그가 솜이 필요하다며 인근에 위치한 솜공장으로 향했다.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솜 공장은 60~70년 정도로 오래된 공장의 기계들이 임 대표와 호흡을 맞춰 보송보송한 목화솜을 토해냈다. 수확한 목화는 일단 씨를 분리하는 기계에 넣어 1차 가공을 한 이후 솜 타는 기계에서 거미줄 마냥 얇디얇은 솜이 한 겹 두 겹 겹쳐지면 두툼한 이불솜이 한 채가 만들어진다. 오랫동안 사용한 솜이불은 임채장 대표의 손을 거치면 새 이불로 거듭난다. 이를 솜을 탄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압축되고 무거워진 솜이불을 기계를 이용해 부드럽게 부풀리는 작업만 거치면 새 이불이 되는 것이다.
“한 10년 정도 있으면 아들에게 물려줄 계획입니다. 대를 이어 가업을 물려주는 것이지요. 목화솜을 구하기 위해 일부러 함양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서라도 꾸준하게 목화솜을 만들어 나갈 겁니다.” 그의 자녀와 어느 정도 협의된 사항으로 목화솜의 명맥은 꾸준하게 이어질 것이다. 자녀와 함께 현 시대에 맞는 침구류를 만들어 나갈 계획도 있다. 또 목화가 무엇인지, 목화솜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는 학생들을 위한 체험학습도 계획한다.
임채장 대표는 “모든 작업에 정성이 가득합니다. 목화씨를 뿌리고 한여름 뙤약볕에 목화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관리합니다. 또 하얀 목화를 따 솜을 타고 침구를 만드는 것까지. 침구를 사용하는 분들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정성을 들입니다. 그 정성이 온기가 되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추운 겨울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임채장 목화장인. 10년이 넘게 매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직접 만든 이불을 전하는 사랑까지 가득한 임채장 칠성면업사 대표다.
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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