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사를 보면 장애의 원인이 선천적인 경우보다 후천적인 경우가 훨씬 많고 장애인 10명 가운데 9명은 후천적 원인에 의해 장애가 발생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천적으로 어쩔 수 없이 장애를 입게 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는 정상인이라도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함양군내 등록 장애인수는 3700여명으로 군민 9명 중에 한명 꼴로 장애인이며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아직도 선진복지를 향해 갈 길이 멀지만 남다른 열정과 노력으로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났다. 바로 경남도지체장애인협회 함양군지회 서윤권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1995년부터 20년째 함양군지회의 일을 맡고 있는 서윤권 회장. 그는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의 벽은 쉽게 허물수가 없다. 장애인 자신부터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후천적 장애인인 그는 회사생활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다 한 번의 사고로 인해 모든 것이 변할 수밖에 없었다. 91년 3월 짐을 내리기 위해 트럭 위에 올랐다 추락, 진단 결과 척추 뼈가 완전히 어스러지며 신경이 완전히 절단되어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40대 한창 일할 나이에 청천벽력 같은 사고로 당한 그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서 회장은 “사고 이후 삶의 의욕이 완전히 사라져 몇 번을 죽으려고 시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다시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라며 힘들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집 안에만 생활하던 그는 바깥 활동을 해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장애인협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장애인들에 대한 처우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그는 “아직도 부족한 점은 많지만 많은 곳에서 도와주고 있어 장애인들에 대한 복지가 상당히 좋아졌다”라고 말했다.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그는 활동 수단으로 함양 최초의 세발오토바이를 사서 장애인 회원들의 집을 직접 방문했다.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부분을 요구하는지’ 설문지를 들고 장애인들의 가정을 찾아 현실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에는 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으면 ‘쉬쉬’하며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분위기로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끈질기게 회원가족들을 만나 그들의 불만을 수용하며 절실히 필요한 시설들을 기관에 요구했다. 장애인 복지센터, 목욕탕, 주간보호시설 등 당장 장애인들이 가장 필요한 시설들이 그의 발로 뛴 노력과 장애인협회 회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군청 등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장애인들의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장애인협회 활동을 하면서 그에게도 기적이 일어났다. 그동안 꼼짝하지 않던 그의 발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무릎 위까지 감각이 돌아오더니 조금씩 발전체로 감각이 되살아났다. 그는 “의사들도 기적이 일어났다고 할 정도로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라며 “장애인협회를 위해 다쳤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과 회원들과의 단합을 통해 함양군의 장애인 복지는 전국 어느 지자체에 비해 떨어지지 않게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서 회장은 “여러 시설들이 만들어졌지만 장애인들을 위한 서비스 프로그램, 교육 등을 종합적으로 할 수 있는 장애인종합복지관의 설립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재의 시설들은 일부만이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시설 규모나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제한되어 있다. 그는 이와 함께 장애인들이 함께 모여 공동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공동 거주시설도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도 집에 누워서 외롭게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아주 많다. 소외된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여건이 하루 빨리 만들어 졌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흔히들 ‘장애우’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잘못된 표현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장애를 가진 친구라는 이 표현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쓰는 표현이지만, 이 표현 자체가 동정을 전제로 한 일방적인 배려로 장애인들이 꺼리는 표현이라며 자제를 요청했다.
서윤권 회장은 “장애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장애인의 심정을 모르는 것처럼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차별과 편견이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라며 소박한 바람을 이야기했다.강대용 기자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