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서는 성탄절을 앞두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待臨節)이라는 절기를 지킨다. 약 한 달 동안 대림절 기간을 거치게 되는데, 이번 주간이 대림절 마지막 주간이다. 성탄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새겨 보자는 의미에서 대림절을 보내는 것이다. 아기의 출산이 임박하면 산모는 물론이고 모든 식구들이 새로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출산 준비를 하게 된다. 태어날 아기가 사용할 배냇저고리부터 손싸개, 발싸개, 기저귀, 젖병, 그리고 아기 이불도 준비해야 한다. 아기를 씻길 욕조나 아주 순하고 부드러운 샴푸도 미리 챙겨놔야 하고, 아기가 바를 로션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다. 성질이 급한 시아버지는 유모차나 보행기, 심지어 세 발 자전거까지 미리 사놓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요즘 신세대 부모들은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미리 대학까지 다닐 수 있도록 태아보험을 들어놓기도 한다. 그만큼 아기를 위해서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평범한 아기를 위해서도 온 식구가 모두 함께 이렇게 많은 준비를 하면서 기다리는데, 온 인류의 구세주이신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면서 기다려야 할까? 아쉽게도 성탄절이라고 하면 대부분 선물을 먼저 떠올린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사다 주신다는 둥, 산타할아버지는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다 아신다는 둥,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다는 둥 성탄절에 예수님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산타 할아버지 얘기만 무성하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서는 매상 올리기에 정신이 없다. 화려한 조명과 반짝이는 불빛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그 어디에서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과는 상관없는 상업적인 광고들만 가득하다. 성탄절에 징글벨이 무슨 소용이 있고, 실버 벨이 왜 등장하는지 모르겠다. 루돌프 사슴 코도 예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아기 예수님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러나 우리는 항상 기뻐하면서 살지 못하고 있다. 무슨 일에든지 감사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얼마 전에 있었던 ‘땅콩 회항 사건’도 마찬가지다. 최고경영자로서 모두에게 존경받아야 할 사람이 사소한 문제로 자기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얼마나 말이 많았는지 모른다. 세계적인 수치거리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어디 그 사람만의 일이겠는가? 돌이켜 보면 목회자인 필자도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기도, 하고 남의 실수를 문제 삼아서 트집을 잡기도 했다.
며칠 전에 필자는 방학을 맞아서 오랜만에 내려온 큰 아들과 함께 네 식구가 지인의 자녀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십여 년 동안 시골 목회를 하다 보니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던 터라, 모처럼 차려입고 나선 김에 가족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사실은 예전에 방송국에 기고해서 받아두었던 가족사진 촬영권이 있었는데, 막상 찾으니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장 체면에 나섰던 발걸음을 되돌릴 수가 없어서 무작정 진주 시내에 있는 유명 사진관에 가족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그런데 내게 가족사진 촬영권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아내는 펄쩍 뛰면서 그냥 가자고 재촉했다. 남자 체면에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사진관 사장님께 가격을 물어보니 35만원이라고 했다. 그 소리에 놀란 아내는 벌써 사진관을 나가 버렸다. 마침 돈도 없었고 카드도 서비스 한도가 초과되었기 때문에 필자의 허영심은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필자는 구겨진 사내의 체면을 애꿎은 아내에게 쏟아 붓고 말았다. 남의 집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이 그렇게 부러웠던 필자는 이번 기회에 멋지게 가족사진을 한 번 찍고 싶었는데, 현실적인 살림을 맡고 있는 아내의 태클에 걸려서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 대놓고 싸울 수도 없고 해서 퉁명스러운 대답으로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들고 나니, 한편으로는 미안한 생각도 들고 철없는 내 행동이 부끄럽기도 했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의 내면에는 ‘어른아이’(Kid-adult)가 있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피터팬 신드롬’이나 ‘모라트리엄 인간’, ‘캥거루족’, ‘자라족’ 등의 명칭으로 불리는 이런 형태의 심리적 현상이 심해질 경우에는 어른으로서의 존재감이 약해져서 책임과 의무를 거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무작정 흥얼거리는 캐롤송이나, 막연한 기대로 난데없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허망한 생각으로 성탄절을 보낸다면 누구라도 ‘어른아이’의 실수를 범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금년 성탄절에는 나 보다 우리 주위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는 뜻 깊은 성탄절이 되기를 바란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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