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인쇄의 정수 팔만대장경,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책 ‘직지’, 그러면 고려의 세 번째 보물은 무엇일까요? 고려청자입니다. 고려하면 청자요 이조(李朝)하면 백자입니다.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로 시작된 도기의 역사. 이집트를 비롯 세계 곳곳에서 많은 도기가 만들어졌지만 고려의 청자를 따라갈 만한 도기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것은 첫째가 형태요 둘째가 빛깔이요 셋째가 문양입니다. 고려청자는 그 모두에서 으뜸이기 때문이지요. 고려청자는 형태에서 풍만하면서도 유려한 곡선미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를 상형청자라 하는데 동물, 식물, 사물 등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고려 사람의 숙련된 기술이 돋보입니다. 표주박, 참외, 죽순, 석류, 연꽃 모양에서 물고기, 용, 사람, 오리, 거북, 사자, 원앙, 원숭이, 토끼 모양까지 다양합니다. 고려청자의 으뜸은 비색청자입니다. 무한 우주 파란하늘에 빨려 들어가고 싶을 정도의 쪽빛, 남태평양의 산호초가 넘실거리듯 한없이 푸른 비취옥의 빛을 고려인은 순수비색으로 흙에 새겨놓았습니다. 어떻게 하여 붉은 흙이 불가마 속에서 태워져 이런 비색을 띄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천하제일의 비색을 띤 상감청자의 대표작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68호.간송미술관 소장)은 간송(澗松) 전형필 선생이 그 당시 기와집 스무 채 값을 주고 일본인에게 사들였다는 일화로 유명합니다. 간송은 우리나라의 문화재가 일본인들에게 빼앗기는 것을 통탄하여 남몰래 조금씩 귀중한 문화재를 사들여 우리 문화재를 지킨 민족 수장가입니다. 청자는 중국 한나라 때 절강성의 월주에서 원시적인 청자가 처음 만들어졌으며 5~6세기경부터 차츰 발전하여 당나라를 거쳐 송대에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10세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고려청자는 발전을 거듭하여 11세기 말에는 종류도 다양해지고 그릇의 모양이나 문양, 구워내는 수법 등에서 고려만의 독특한 특징이 나타났습니다. 순수비색청자가 발전하면서 12세기 중엽 상감이라는 새로운 기법이 등장합니다. 상감(象嵌)기법은 조개껍질을 붙이는 나전칠기나 은사를 넣는 금속공예의 은입사 방식을 응용하여 발전된 것으로 그릇 표면을 파내어 모양을 내고 초벌굽기를 한 후 다른 종류의 흙 백토나 흑토를 채워 유약을 바른 후 다시 굽는 상감법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청자는 1200도가 넘는 고온에서 만들어집니다. 규석, 장석, 석회석이 녹아있는 유약 속에는 3%의 철도 들어 있는데 이 철의 성분이 고온에서 환원되는 과정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색이 나옵니다. 이것이 상감의 비법이며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고려만의 도공들이 가지고 있던 비술이었습니다. 연화, 연화당초, 모란, 국화, 국화당초, 앵무, 어룡, 파도 무늬 등이 많이 새겨졌습니다. 이 상감청자가 고려 귀족문화의 절정기를 이루며 다양한 기법의 세련된 청자가 화려하게 꽃피었던 곳은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 일대였습니다. 관요 형태의 대규모 가마터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무신의 집권과 몽골의 침입을 겪으며 청자문화는 13, 14세기에 쇠퇴를 거듭하면서 점차 황색이나 갈색을 띠는 소박한 분청사기(粉靑沙器)가 고려 말 조선 초로 청자의 전통을 이어가고 분청사기는 다시 흰색을 띠는 이조백자로 발전해 갑니다. 임진왜란 때 많은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에 끌려간 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 아리타도기[有田燒:伊萬里燒]의 도조(陶祖)로 추앙받는 한국 출신 도공 이삼평[李參平]은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공의 한 사람입니다. 그의 도자기는 일본 전국으로 퍼져 이마리도기라는 별칭과 함께 명성을 떨쳤으며, 그에 의한 아리타도기의 창시는 일본 도자기사상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두산백과)세계에서 감탄하는 도드라진 유명 고려청자와 이조백자 명품 몇 개를 한번 감상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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