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 「얼짱 한국사 탐험대」 주관으로 <스페셜 한국사 특별 좌담회>를 라이브 생방송으로 전국에 중계하겠습니다. 오늘 나오신 분은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 선생님의 후손이라는 김알랑가 교수와 <인디아나존스> 영화를 다섯 번이나 보아서 운명적으로 탐험대장일 수밖에 없다는 얼짱 한국사 탐험대장 문쌤과 유네스코 문화재감정위원회에서 국제봉사활동에 참가하는 게 소원이라는 얼떨떨 역사학도도 자리에 모셨습니다.고려왕조 500년을 살펴보면 외세의 침입이 참 많았어요. 거란의 3차에 걸친 침입(993년), 여진의 침입, 몽골(원)의 침입(1231),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 등 힘든 고난의 역사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시대보다 빛나는 최고의 귀족문화 전성기를 이룩했다는 것은 역사의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알랑가 교수님 한 말씀 해주시지요.김알랑가 교수: 그렇습니다. 알랑가 모르겠는데 고려, 대단합니다. 얼마 전 「왕가네 식구들」이라는 드라마를 보니까 큰딸이 사기를 당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니까 식구들이 똘똘 뭉치고 가족애가 살아나 위기를 극복하면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찾게 된다는 이야기에 전국이 떠들썩했어요. 천년지혜를 목판에 새긴 고려의 <팔만대장경>, 이것이 바로 위기의 국난을 지혜롭게 극복한 고려의 최고 보물이라는 것을 알랑가 모르겠네요. 탐험대장 문쌤: 동감입니다. 거란이 사대관계(事大關係)를 요구하며 침입해 왔어요. 그러자 고려는 부처님의 불심으로 외적을 물리치고자 팔만대장경을 제조하기 시작했어요. 현종 2년 1011년에 시작하여 1087년 선종 때 완성되었는데 6000여권 규모의 목판으로 동양에서 가장 방대한 분량이었지요. ‘초조대장경판’이라 부르지요. 하지만 고종 18년 몽골의 2차 침입으로 의천의 ‘속장경’과 대구 부인사에 있던 ‘초조대장경판’이 불타 소실 되어버리고 말았어요(1232년). 물론 ‘황룡사9층목탑’도 불타 이만저만한 피해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신정권 때 최우가 몽골의 침입을 막고자 고종 23년 대장도감과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1236년부터 1251년 까지 16년 동안 강화도에서 다시 대장경판을 새겨 해인사에 보관하게 되었지요. 이것을 ‘해인사재조대장경판’ 즉 지금의 국보 제32호인 ‘고려대장경판’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8만4천 번뇌(煩惱)에 대치하는 8만4천 법문(法門)을 새겼어요. 산벗나무, 돌배나무, 단풍나무들이 사용되었다고 하고 경판의 크기는 24×68-78cm 두께 3-5cm이고 무게는 3kg 정도지요. 총 81358장으로 6803권이 단 한자도 빠짐이나 더함이 없이, 단 한자도 틀림이 없이 가장 방대하게 가장 정확하게 목판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세계 모든 대장경의 표본과 기준이 되고 있어요. 팔만대장경을 하루에 1권씩 읽으면 20년이 걸리는 너른 진리의 바다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새긴 경장, 불교의 계율과 해설을 새긴 율장, 불경 연구서를 실은 논장으로 되어 있지요. 알랑가 교수: 대단한 민족문화유산입니다. 당대 사회계층 및 불교 종파를 초월하여 호국불교로서 국난극복 의지로서 천년을 새긴 지혜가 바로 팔만대장경입니다. 그런데 세계인들이 놀라는 또 한 가지가 있어요.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 즉 해인사의 ‘대장경판전(국보 제52호)’입니다. 과학적이면서도 놀라운 건축 지혜에 혀를 찼습니다. 이 대장경판전(보관 건물)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고려팔만대장경’은 2007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 된 것을 알랑가 모르겠네요. 얼떨떨 역사학도: 제가 조사한 바로는 경판을 바닷물에 3년 동안이나 담가 놓았다 말리고 옻칠을 하고 마구리에 동판을 붙이고 하여 뒤틀림이 단 한 개도 없데요. 2011년이 대장경 제조 1000년이 되는 해인데요 건물 안에는 천년 동안 생쥐 하나 거미줄 하나 생겨나지 않았데요. 바닥은 숯, 석회, 소금, 모래 등으로 강회다짐을 하여 건축하고 창틀도 위아래 크기가 다르고 앞 뒤 창문 크기도 다르기 때문에 온도, 습도, 직사광선, 통풍 등이 너무나 잘 되어 있어 천년 그대로 변함없이 부처님 말씀이 진리로 남아 있데요. 또 해인사에서는 1년에 한 번씩 모든 팔만대장경판을 꺼내 불자 신도들이 1장씩 성스럽게 부처님을 모시듯 머리에 이고 탑을 도는 ‘정대불사’를 한데요. 부처님 말씀도 새기고 한 번씩 햇빛을 쏘임으로서 보관의 효과도 높인데요. 한국 사람들, 대단하지요? 탐험대장 문쌤: 6.25 때 미군이 지리산을 비행기 폭격하려 했었어요. 그때 편대장 김영환 장군이 해인사를 폭격하지 말라는 폭격금지명령을 내려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존되었어요. 얼마나 다행입니까. 둘도 없는 귀한 문화재가 한순간에 날아갈 뻔 했어요. 공적비가 세워지고 문화재청은 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어요. 사회자: 고려의 팔만대장경은 진리와 지혜의 바다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다에 불법을 새긴 해인(海印)이 아니겠습니까? <스페셜 한국사 탐험 좌담회> 마치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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