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부녀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멸치액젓 필요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웬 멸치액젓? “얼마 있으면 김장철이라예. 그라믄 고춧가루, 소금, 액젓, 청각은 필수라예. 그래서 마을 부녀회에서 김장철을 맞아 공동으로 구매하기로 했어예. 필요하시면 말씀만 하이소.” 참 좋은 산골마을이다. 이미 강경포구에 가서 준비해 두었지만 좋은 뜻을 저버리고 싶지 않아 참여했다. 작년까지는 텃밭에서 직접 배추를 키워 김장을 했는데 올해는 작전을 바꾸었다. 전업주부가 아닌 부부가 60여 포기의 김장을 하는 일은 늘 버거웠다. 김장을 하고 나면 너나 할 것 없이 몸살이 나 끙끙거린다. 특히 배추를 씻고 절이고 양념 속을 치대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고랭지라 맛도 좋고 약도 안하고 절임도 잘하는 지인에게 절임배추를 가져와 속을 치대는 일만 하기로 한 것이다. 둘이 사는 데 무슨 김장을 60여 포기나 하느냐고 하겠지만 모자랄지도 모른다. 대처에 나가있는 아들 딸에게도 보내주어야 하고, 처제에게도 보내주면 좋아라 할 것이다. 또 손님이 많이 찾아오는 여름철에 산골 묵은지 김장 김치를 내어 놓으면 탄성을 지르지 않는 사람이 없다. 도시 양반들 입맛은 아직 살아서… 또 김장을 하지 않는 가까운 이웃과 나누어 먹으려면 그 만큼은 해야 한다.  도시건 시골이건 요즘 젊은이는 김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치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마트에 가면 갖가지 종류의 김치가 있다.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해 먹으면 되는데 애쓰게 무슨 김장이냐는 것이다. 된장은? 고추장은? 청국장은? 간장은? “그거, 다 살 수 있어. 핸드폰 하나면 돼.” 그렇다. 달나라도 가는 현대에 뭐는 안 될까. 마지막에는 먹지 않으면 된다. ‘어머니의 손맛, 그래, 바로 이 맛이야.’는 이제 그 뜻을 알 수 없다. 어머니의 손이 필요 없어졌다.  2013년 ‘김장’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김장은 한국 사람들이 춥고 긴 겨울을 나기 위해 많은 양의 김치를 담그는 것을 말한다. 김치는 한국 고유의 향신료와 해산물로 양념하여 발효한 한국적 방식의 채소 저장 식품을 일컫는데,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760년 전부터 김치가 있었다고 한다. 김치는 한국인의 식사에 가장 소박하지만 가장 사치스러운 빠질 수 없는 반찬이다. 한국은 원조 김치왕국인데 세계에 김치 수출을 석권하고 있는 곳은 일본이다. 또 한국 식당에서 판치는 김치마저도 엄마손표 우리 김치가 아니라 중국산 김치다.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김장 김치 배추 속에 들어있는 생새우나 생태, 오징어, 황석이, 생조기, 생갈치 이런 속젓이 발효되고 어슷어슷 썰어 넣은 무 석박지와 함께 어우러진 김장김치의 맛은 감히 다른 나라에서 따라올 수 없는 엄마손표의 맛인 것이다. 어디 김장김치뿐이랴, 이가 시리도록 살얼음이 동동 떠있는 파란 무청의 동치미나 백김치, 어금니 시큼한 파김치, 돌산 갓김치, 시뻘건 채김치, 뭐니뭐니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총각김치, 한국은 김치왕국이 아닐 수 없다. 올 겨울 맛있는 엄마손표 김장김치를 담아보자. 김장을 못한 주위의 이웃들과도 정을 나누어 보자. 한국인의 정체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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