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가야해서 집을 나서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데 지리산종복원소 앞이 여간 번잡스럽지 않다. 외지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차를 세워놓고 이리저리 모였다 흩어지고 다시 모이면서 단풍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고 있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단풍이 유난히 더 예뻐서 그러겠지만 운전을 하는 사람에게는 조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일본에는 이런 단풍을 튀김으로 특화하여 파는 곳이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하니 음식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도 고운 단풍의 색을 잃지 않게 하면서도 맛있는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러다 이른 가을에 집에 해둔 단풍깻잎 장아찌로 생각이 번졌다. 집에 너른 밭이 없으니 들깨를 넉넉히 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형편이라 가을이 되면 단풍든 깻잎을 구하는 것도 큰일이다. 지난 몇 해 동안은 이웃에 귀농한 갑장친구 깨밭에서 얻어왔지만 올해는 어쩌다 그도 놓친 터라 애면글면 하며 다녔더니 보은에 사는 십년지기가 아예 삭힌 깻잎을 좀 보내왔다. 귀하게 생각하고 잘 손질해서 막장에 넣어두었는데 오늘따라 먼 길 가면서 그 장아찌 생각이 나다니 나도 내가 어처구니없는 사람으로 여겨진다.들깨는 밭 한 곳에 종자를 부어놓았다가 다른 농사를 쉬는 비 오는 날에 비를 맞으며 밭에 정식을 한다. 정식하고 남은 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다. 그리고 잎이 퍼지기 시작하면 따다가 간장절임을 해서 먹기도 하고, 상추 등과 함께 쌈으로도 먹고, 채 썰어 다른 양념과 함께 음식에 이용한다. 그러다 꽃이 피고 열매가 들면 따서 부각도 해서 먹는다. 열매가 완전히 익으면 털어 저장해 두고 기름을 짜서 양념으로 쓰고 남겨둔 열매는 때때로 꺼내 갈아서 미역국을 끓이거나 머위깻국처럼 각종 이름을 붙인 ○○들깨탕의 재료로 쓴다. 외할머니께서는 들깨가 거의 익어갈 무렵 노랗게 단풍든 깻잎들을 따서 모아 소금물에 담가 삭혔다가 막장 속에 넣어 장아찌를 만들어 밥상에 올려 주셨다. 들깨를 털고 남은 마른 대궁은 다시 모여 밥을 할 때 불쏘시개로 쓰였고, 그 재는 뒷간에 쌓였다가 다시 밭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으니 인간에게는 건강을 선물하고 땅을 살리는 선순환의 좋은 예가 되었던 식물이기도 하다. 동의보감에 들깨는 성질이 따뜻하여 몸을 덥게 하고 독이 없으며 기를 내리게 하고 기침과 갈증을 그치게 하며 간을 윤택하게 해 속을 보하고 정수(精髓)를 메워준다고 기록하고 있다. 껍질을 벗기기 않은 들깨는 산패의 염려도 없을 뿐 아니라 생명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고귀한 생명체이므로 껍질을 벗기지 말고 보관해 두면서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기름을 짜고 조금씩 거피를 하여 음식에 이용해야 한다. 들깻잎은 속을 고르게 하고 취기를 없애 상기해수(上氣咳嗽)를 치료하고 벌레 물린 데 또는 종기에도 짓찧어 붙인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맛이 좋아야 음식이다. 단풍깻잎장아찌는 한여름의 푸른 깻잎과는 또 다른 맛을 가진 맛있는 음식이므로 잉여농산물로 만들어졌으나 나에게는 귀한 음식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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