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은 농업비중이 70%을 차지해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는 업종이 농업이요, 지역 경제를 이끄는 것도 농업인 것이다. ‘농민이 잘 살면 함양이 잘 산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함양 농업의 위상은 높다. 이같이 함양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들을 위해 함양군은 ‘자랑스런 농업인상’을 만들어 매년 시상하고 있다. 자립경영부문과 창의개발부문 농업활력부문 등 3개 부문에 걸쳐 시상하는 농업인상은 함양 농업인들의 최고의 영예로 남는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함양 농업을 지켜온 이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높이고 농업의 소중한 가치를 재인식시키기 위한 농업인상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수여된다.올해 농업인상 수상자로는 자립경영부문 휴천면 송영철(66)씨, 창의개발부문 안의면 박홍기(75)씨, 농업활력부문에 유림면 민갑식(59)씨 등 3명 선정됐다. 이번 수상자들은 농업의 신성장 동력으로 이끌고 있는 선도농가들로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우리 농업을 지켜내고 더욱 발전시켜온 인물들이다.자랑스런 농업인상 시상식은 오는 11월18일 문화예술회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농업인의 날’ 행사장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어렵지만 축산의 경쟁력은 살아 있습니다”자립경영부문 송영철씨 “여러 분야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부족한 점이 많은 저에게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감사히 생각합니다. 힘든 가운데서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전체 한우농가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40여년의 축산 외길 인생으로 자립경영부문 농업인상을 수상한 송영철(66)씨. 축산 한 분야에 매진하며 자신을 갈고 닦으며, 직접 체득한 경험들을 한우농가들과 공유하는 그는 함양 축산업의 대부로 통한다. 모든 농업인들이 힘든 것은 마찬가지지만 축산 농가들은 FTA, 소값 폭락, 구제역 등 연이어 발생한 악재 속에서도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송영철씨의 현재 사육 규모는 500두로 함양에서는 가장 많은 사육 두수를 자랑한다. 최첨단 시설을 통해 인건비를 대폭 축소한 결과다. 지난 1972년 축산업을 인연을 맺은 것이 현재의 규모에 이르고 있다. 처음 시작은 젖소 한 마리로 “당시 젖소 두 마리로 자식 대학 공부를 시킬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높은 가격이 나왔었다. 착실하게 규모를 키워 지금에 이러고 있다”라고 말했다. 축산 외길인생이란 말이 송영철씨에게 어울리는 표현이다. 소규모로 시작한 축산업은 이후 현재의 자리인 휴천면으로 축사를 이전하면서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 축사를 옮길 당시 대규모 단지에 최첨단 시설이 설치되자 수지타산이 맞겠느냐며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료가격과 인건비 등이 많이 올라 이것을 줄여야만 한다. 먹는 사료값은 줄일 수 없으니 인건비를 줄여서라도 이윤을 봐야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속적인 자기 혁신과 새로운 축산기법을 도입하고 적용해 자신만의 노하우로 만들고, 이를 주변에 전파하는 등 선도농가로서 선진농업의 선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는 지역 축산인들의 존경을 받으며 행정과 축산인들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의 축사는 최첨단 시설이 즐비하다. 지금은 많은 부분이 보급되었지만 스위치 하나로 사료를 공급하는 자동 급여기, 온수기 등 일하는 것은 물론 가축들도 편안한 쉼터이기도 하다. 한우들이 먹는 사료도 A급으로 “좋은 사료를 먹어야 자라는 것도 빠르고 육질도 좋아진다.”라며 그가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전하기도 했다. 송영철씨의 하루는 5시 이전에 시작된다. 새벽 5시와 오후 4시 하루 두 번 사료를 공급한다. 이것은 그가 축산업을 시작한 40여년 동안 한 번도 어기지 않은 철칙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이기도 하다. 그는 “소는 고급육으로 가야한다. 아무리 수입육이 들어와도 품질만 좋으면 높은 가격에 팔릴 수 있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발휘해 고급육 생산에 매진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6개월된 송아지를 입식해 2년의 정성을 들여 팔면 등급에 따라 큰 가격차를 보이기 때문에 최대한 고급육 생산에 힘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는 계속되는 악재에 갈수록 어려움에 처하고 있는 축산업이지만 분명한 돌파구가 있다고 자신한다. 그는 “한 눈 팔지 않고 꾸준하게 축산업 한 업종에만 매진한다면 불황도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함양의 희망은 농업입니다”창의개발부문 박홍기씨 “다시 태어나도 농촌에서 농업인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창의개발부문 수상자인 박홍기(75)씨는 여전히 농업 예찬론을 편다. 50년의 농사일이 지겨울 것도 같지만 먹거리를 만드는 농사야 말로 그의 천직이며 그가 평생을 바친 일터이다. 농업인상을 받은 모든 이들이 그 만큼 지역사회에 이바지 했지만 박홍기 회장이야 말로 함양 농업을 선도했으며, 꾸준한 자기개발을 통해 지역에 수많은 기여를 해오고 있다.  박홍시씨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사과, 오미자, 양봉, 담배(화근초) 등 그는 누구보다 앞서 작물을 재배했으며, 지역에 보급하는 선도농가로서 앞장서 왔다. 현재는 양봉을 지역에 보급하며 함양군양봉협회 회장을 맡아 또 다른 시작을 하고 있다. 박 회장은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까지 그곳에서 보냈지만 항상 마음의 안식을 주는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조금은 어린 나이에 양친을 떠나보낸 그에게 고향에 대한 향수가 남달랐다. 그는 차근차근 준비했다. 경희대 법대를 다니면서도 서울 농대 학생처럼 수시로 동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고향으로의 준비를 시작했다. 대학 졸업 이후 공무원으로 취업을 했지만 ‘내가 있을 곳은 고향 농촌이다’라는 생각으로 그동안 쌓아놓은 모든 것을 팽개치고 고향 안의로 내려왔다. 그는 함양에 터를 잡으며 70% 이상이 산으로 둘러싸인 함양의 특성을 바탕으로 산을 이용한 농업을 구상했다. “처음부터 산을 이용한 농업을 생각했었다. 옛날 시대의 농업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주곡은 안된다. 산지, 산을 이용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동안 버림받다시피 했던 산을 이용한 작물을 구상했고 함양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사과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사과를 생산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췄지만 척박한 토양으로 제대로 된 수확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사과농사를 위해 대규모로 퇴비를 만들어 산지를 개간했다. 수년이 흐른 후 보란 듯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72년에는 도북지역에 과수원을 만들어 지금의 도북사과의 신화가 시작이 될 수 있었다. 박홍기 회장이 사과농사만 지은 것은 아니다. 그는 사과나무를 심은 후 수확을 위해서는 5~6년이 필요했는데 이때 양봉은 물론 화근초담배, 호두, 오미자 등 다양한 작목을 시도했다. 회장을 맡고 있는 양봉협회에도 열성적으로 일하고 있다. 특히 품질 좋은 꿀을 생산하지만 브랜드를 가지지 아쉬움이 많다. 그는 “함양에서 생산되는 꿀이 전국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대표 브랜드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50년을 농업에 종사하며 수많은 어려움도 겪었지만 그는 여전히 농업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한다. 그는 “농업이 약화된다면 우리나라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수출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함양군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30~40%의 농업인구가 유지되어야 한다. 농업을 기초로 다른 산업까지 연계되어 발전할 수 있다”라고 함양 농업의 미래를 생각했다. 함양 농업이 선구자, 구보다 앞선 선진 농업을 도입하고, 아낌없이 주변에 전해준 박홍기 회장. 그는 “지금도 무엇인가를 해 보고 싶다. 마음을 먹었을 때 시작하면 늦지 않는다. 움직일 수 있는 한 일을 계속 하고 싶다”라며 평생직장 농업을 생각했다. “농업인들의 땀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습니다”농업활력부문 민갑식씨 “땀과 정성, 그리고 노력으로 명품 함양 곶감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색감은 물론 당도까지 뛰어나 명품으로 통하는 함양곶감. 수많은 곶감 농가들의 노력의 결실이지만 그 선두에는 올해 농업인상 농업활력부문을 수상한 민갑식 회장이 그 중심에 있었다. 민갑식 회장은 지난 2008년 함양곶감영농조합법인 출범 당시부터 대표이사 직을 맡아 함양 곶감이 명품 반열에 들어서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현재 650명의 법인 회원들과 함께 명품 곶감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지금이 곶감 생산에 가장 바쁜 시기다. 민 회장도 곶감 작업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심어 가꾼 1만5000평 규모의 감나무 밭에서 생산된 감 중에서 좋은 것들만 선별해 곶감을 만든다. “곶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원료감입니다. 함양 고종시는 색깔부터 선홍색을 띄며, 씨도 거의 없어 원료감 중에서 최고입니다.” 민 회장은 함양 특산 함양 고종시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민 회장이 처음 대표이사로 취임했을 당시만 해도 곶감은 만들지만 원료감이 절대 부족했다. 함양 고종시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대규모로 곶감을 만들 수 있는 양은 충분하지 못했다. “우리 함양의 특성이 담긴 우리의 것으로 곶감을 만들어야 우리의 브랜드로 성부를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때부터 민 회장은 군과 법인 회원들과 함께 함양 고종시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군내에는 25만주에 이러는 함양 고종시가 열매를 맺어 원료감의 생산에서부터 곶감이 만들어지기까지 순수 함양의 것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함양지역에서 생산되는 곶감은 당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곶감 특유의 고운 선홍색 빛깔로 선호도가 아주 높다. “지리산과 덕유산이라는 천혜의 자연 환경 속에서 건조하면서도 찬바람이 불어와 당도와 색감이 우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건조기 등을 어느 정도 이용하고 있지만 함양의 자연에서 만들어진 곶감은 자연 혜택을 고스란히 받아 최고의 품질일 수밖에 없다.  함양 곶감의 유명세는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500여년전 함양군수를 지냈던 김종직선생의 문집인 점필제집을 보면 집집마다 감나무가 있어 감의 맛을 팔릉(八稜)의 진미에 비유 했을 뿐만 아니라 고종 황제가 탄복해 고종시로 명명했다고 전해지는 함양곶감이 지리적 표시제 제 39호로 등록되어 지리적 특성과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민갑식 회장은 “이제 어느 정도 명품 함양 곶감의 인지도를 높였으니, 대중화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세대 입맛에 맞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라고 주문했다. 민 회장은 곶감과 함께 또 마나 감자, 하수오, 매실, 블루베리 등 다양한 작물들을 시도해 보았다. 누구보다 앞서 다양한 작물들을 시도하니 어려움도 많았다. 직접 작목을 찾아 전국을 돌기도 하고, 잘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등 선도농업인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곶감과 궁합이 잘 맞는 블루베리를 주력 농업으로 선택했다. “곶감은 겨울에, 블루베리는 여름에 판매해 자금 유통이 조금은 원활하게 됩니다. 다양하게 먹고 살 먹거리가 있어야 귀농인들도 함양에 정착하기 쉬워집니다.”라고 말했다. 민갑식 회장은 이번 농업인상 수상에 대해 “이 상은 나보다 아내가 받아야 하는 상입니다. 제일 고생한 사람이 아내지요. 농촌생활이란 것이 부부가 서로 협력해서 일해야만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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