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어머니는 일 년에도 몇 번 씩 치성을 드리셨다. 그것의 시기는 농사와 무관하지 않았다. 주 시기는 농사가 끝나는 섣달에서 다음 해 농사가 시작되기 전 이월까지였다. 농한기 다소 여유가 있을 때 천지신명께 치성을 드려 풍작과 가족의 안녕을 구하려 하셨다. 음력 섣달은 추위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치성이 이미 정해져 있으면 굳이 금줄을 치지 않아도 사흘 전쯤에서 비린 것을 드시지 않고 과일 두어 가지와 나물거리 등을 장만해 두고 큰 소리도 내지 않으시는 표정과 몸가짐에서 치성 드리는 날이 다가오는구나 하는 예감을 하게 된다. 그날 자시가 다가오면 정갈한 우물물을 길어다 장독간에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는 물소리가 들린다. 방에 들어오시는 어머니 머리에선 얼음이 비친다. “어머니 춥지 않으세요?” 하는 물음에 부정이라도 탈까봐 어머니는 단호하게 “춥기는” 이 한 마디로 더는 내가 물을 수 없게 만드셨다. 그리고는 밥 나물 과일이 든 광주리를 들고 나에게 서너 개 짚단을 쥐어 주며 따르게 했다. 어머니의 치성 장소는 동네를 벗어나 산 속 개울의 근원이 시작되는 곳이기에 어린 나에게 한밤의 산길은 한 발도 옮기기 싫은 무서움의 극치였다. 좁은 산길이기에 어머니 앞을 서며 앞에서 뭔가가 튀어 나올 것 같고 뒤에서면 뒤에서 뭐가 당길 것 같은 나중에는 온 머리가 하얘지고 그 장소에 다다를 때까지 어둠뿐인 그 산이 나에게는 지옥이었다. 어머니는 온 가족의 안녕과 풍년을 간곡히 비셨고 들고 간 짚에 불을 붙여 나는 불을 쬐며 빨리 끝나기만을 빌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간절하고 지극한 마음이었으면 얼음을 머리에 이고 기원을 하였을까 싶다. 치성이 끝나면 축시가 나가온다. 그 긴 시간동안 얼마나 강건한 마음으로 계셨으면 감기도 들지 않았을까. 어떤 일이 주어질 때 깊은 산 속에서 세상의 어떤 것도 범접할 수 없도록 경건하고 엄숙하게 가족의 안위를 기원했던 어머니의 온기가 항상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아 힘이 났다. 이제 그 치성은 볼 수 없지만 어머니의 온전한 가족을 향한 사랑만은 내 피 속에 흐르고 있다. 11월은 수능이 있는 달이다. 12년의 공부가 평가를 받는 날이다. 다수의 학부모님은 신께 기원을 드릴 것이고 주위의 친구나 친지들도 여러 형태로 수험생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전통의 방식은 꼭 붙으라는 엿과 찹쌀떡 신식으로는 잘 찍으라는 포크에 냄비까지 수 없는 정성과 사랑들을 주겠지만 정작 주어야 할 것은 차분하게 차근차근 생각하여 실수 없게 하라는 격려가 아닐까 싶다. 어디서든 시험을 보는 수험생들은 실수없게 하라는 부탁과 진심의 기원을 드리고 싶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