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의 순서와 이름은 꼭 외울 필요는 없지만 외워두면 좋은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참고로 말하면 옛날 고등학교 다닐 때 조선의 왕들 이름을 노래 곡조에 붙여 외었던 기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태정태세문단세... 이렇듯 고려왕들의 순서와 이름은 이렇습니다. 태혜정광경성목, 현덕정문순선헌, 숙예인의명신희, 강고원렬선숙혜, 목정공우창공(양왕). (왕의 앞만 딴 글자로 뒤에 조나 종을 붙인다.)(밑줄 친 왕 6명은 원간섭기의 왕으로 앞에 충을 붙인다.)노래곡조는 조선왕 외울 때처럼 ‘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라는 ‘봄나들이’ 노래에 맞춰 부르면서 외우면 쉽습니다. 고려는 1대 태조 왕건으로부터 34대 공양왕까지 34대 498년을 지속하였습니다. 34명의 왕중 1대 태조 왕건, 4대광종, 6대성종, 31대공민왕의 업적을 이해하면 대충 중요한 것은 거의 다 알게 되지요.  태조 왕건의 업적은 앞에서 말씀드렸기 때문에 한번 살펴보시고 추가한다면 고구려 옛 땅 만주를 찾기 위하여 북진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거란족(요)이 친교를 맺자고 사신이 낙타 50마리를 선물로 들고 왔지만 왕건은 그 사신을 감옥에 가두고 낙타 50마리를 <만부교>라는 다리 밑에 묶어두고 굶겨 죽였어요.(만부교사건). 거란족은 우리 민족 대조영이 세운 발해를 멸망시킨 적대국이기 때문에 외교를 틀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지요. 또한 서경을 제2의 수도로 정하고(분사제도) 북진정책의 전진기지로 삼아 청천강에서 영흥만에 이르는 북쪽 영토를 조금이나마 회복하였습니다. 자신이 죽고 나서 고려의 운명까지 걱정했습니다. 후대 왕들에게 나라를 다스리는데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고 <훈요10조>를 남겼습니다. 내용인 즉슨 1.불교를 장려하여 연등회와 팔관회를 성대히 열어라. 2.서경을 중시하여 왕이 된 자는 자주 서경에 가서 정치를 하여 북진정책을 잊지 말아라. 라고 말했지요. 또 후대 문무백관들이 지켜야 할 규범인 명심보감을 남겼으니 그게 바로 <정계>와 <계백료서>입니다. 고려의 특징을 흔히 귀족중심사회라고 말합니다. 이는 신분구조가 1귀족, 2중류(하급관리), 3양인(농민)+향,부곡.소 특수민, 4천민(노비) 등 네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고 나라의 지배층인 고려귀족에게는 공음전이라는 땅이 주어져 세습될 수 있어 부자로 살도록 구조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음서라는 제도가 있어 5품 이상의 양반 자녀들은 과거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높은 벼슬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즉 낙하산 공천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으니 귀족중심사회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고려의 중앙행정체제를 보면 귀족이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나라의 3성6부제를 모방하여 ‘2성6부’를 운영했지만 고려 실정에 맞게 나름대로 독창적으로 만들어 운영하였습니다. 왕 아래 2성 즉 중추문하성(중요한 정책 합의), 상서성(실행기관)을 두고, 상서성 속에는 6부 이부(공무원 임명, 승진), 병부(무관인사 및 군사), 호부(인구, 조세), 형부(법률, 재판, 노비), 예부(의례, 교육, 과거), 공부(물품제작, 조달, 건축, 토목)를 두었습니다.그 외 중추원(=청와대 비서실, 군국기무, 왕명출납), 어사대(=감사원, 풍속교정, 관리감찰), 삼사(=한국은행, 곡식 화폐의 출납, 회계)라는 기구를 두었습니다.또 비상특별기구 즉 임시재추합좌기구(재신+추밀)인 도병마사(국방)와 식목도감(법제와 격식)을 두었는데 이 기구는 전쟁과 같은 국가의 위기상황이 벌어졌을 때 정2품 이상의 고위 귀족관리들이 급히 모여 위기를 대처하는 고려만의 독창적인 기구였습니다. 고려 행정의 꽃이지요. 6대 성종은 전국을 ‘5도양계’로 나누어 지방행정을 관리하였습니다. 5도(서해도, 교주도, 양광도, 전라도, 경상도)는 백성의 생활을 돕는 행정중심도시이고, 양계(북계, 동계)는 국경을 접하는 지역으로서 군사적인 행정체계를 갖춘 지역입니다.군사조직은 중앙에 ‘2군’(국왕 친위부대) ‘6위’(수도개경방어와 치안유지)를 두었고, 지방은 ‘주현군’(군사, 치안, 잡역) ‘주진군’(변방국방)을 두었습니다. 교육제도로는 개경에 양반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국자감(최고교육기관)이 있었고, 지방에는 향교(국립중등학교)가 있어 유교 경전을 공부하였습니다. 특히 관학(官學)보다는 사학(私學)이 더 발전하였는데 지공거(知貢擧,과거총책임자) 최충의 집에는 학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습니다. 이에 9재학당(과목별전문학원)을 세워 가르쳤고 그의 제자들도 곳곳에서 가르쳤는데 이들을 사학12도라고 부릅니다. 이 정도면 고려의 여러 가지 통치체제를 이해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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