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풍속 중에서도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한가위와 설날은 조상을 기리고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미풍양속입니다. 새해 첫날인 설날은 가문의 후손들이 함께 모여 조상님께 제사를 드리고, 그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혈연의 정을 나누는 날입니다. 또한 웃어른이 아랫사람에게 덕담을 건네고 집안의 대소사를 함께 의논하며, 지난날을 성찰해보고 새해의 포부를 설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가위는 풍성한 추수를 맞게 해주신 하늘과 조상님께 감사하는 추수감사절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가위는 조상님을 벼리가 되어, 살아있는 후손들이 다함께 만나기로 민족적으로 기약된, 축복의 날입니다. 중추절이 다가오면 모두들 부모, 형제를 만나기 위해 귀향 대이동이 시작됩니다. 팔월의 보름달이 차오르면 벌써 고향 찾아가는 마음으로 기다려집니다. 귀향길이 멀고 고단할지라도 마음만은 즐겁습니다. 부모님 슬하에서 함께 자랐던 보금자리, 고향 산천으로 그리운 형제자매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삼촌, 사촌들이 집안에 들어설 때마다 신이 나서 인사하기에 바쁩니다. 집안이 붐비고 온통 웃음꽃으로 왁자지껄합니다. 한가위 아침에는 조상님께 제사를 올리면서 부끄러운 후손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도 해봅니다. 제사를 마치고 성묘하러 가는 길은 차량으로 붐비지만 마음만은 느긋합니다. 내 어릴 적 놀던 강변에는 코스모스가 갈바람에 흐드러지게 낭창거리고 있습니다. 산소로 오르는 기슭마다 들국화도 새롭습니다. 어릴 적 한눈으로 흘러 보냈던 그 풍경들이 오랜 세월 속에 가슴 저미도록 정겹습니다. 성묘하는 산자락은 참으로 허허롭습니다. 이 시간이면 이승과 저승을 잇는 갈바람이 산 넘고 강을 건너 산소에 내려앉습니다. 죽은자와 산자, 과거의 조상과 현재의 후손이 이심전심으로 해후하는, 하늘과 땅이 고요히 어우러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아버지와 삼촌, 형님과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성묘하러 왔는데, 이제는 할아버지 산소의 옆자리에 아버지와 어머니, 삼촌과 큰형님이 나란히 봉분 안에 누워계신다니, 인생은 참으로 무상하기만 합니다. 같은 산천을 살았어도 이 자리를 찾는 후손은 세월 따라 달리합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살아생전 부모님의 모습과 말씀이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제 어릴 적 아버지는 이 산자락에 고구마도 심고 고추, 기장도 심었습니다. 겨울에는 땔나무를 하러 이 산자락에 오면 금방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리는 날도 많았습니다. 아버지와 형님 따라 이 산자락에 오는 날이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봄이면 진달래 만발하고 여름이면 산딸기 따먹던 산소 주변에는 이제 큰 나무들로 가득 차버렸습니다. 산 아래에는 여전히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강변 너머 강물은 굽이굽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명절은 살아있는 후손들을 위한, 가족의 만찬일입니다. 또한 삶의 의미를 세월 속에 자리매김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내세를 위해 이승에서의 삶 가치를 되새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지천에 피어나는 이름 모를 꽃들도 씨알에서 싹 틔웠듯이, 우리의 삶도 핏줄로 재생되어 왔음을 깨닫습니다. <효경>의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는 구절처럼 생명의 근원을 알고 자신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孝)의 근본일 것입니다.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위대한 유산은 재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가슴에 부모의 얼이 뿌리내리는 것입니다. 조상의 얼을 되새김하는 성묘는 우리 민족의 위대한 유산입니다. 날 낳으시고 기르시며 베풀어주신, 부모님의 사랑은 저에게 물려주신 가장 큰 유산이었다고 겸허히 고백해봅니다. 먼 훗날 우리 아이들도 어른이 되어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조상의 얼과 혼을 찾아 우리들 선영으로 다시 찾아오겠지요. 이번 한가위에도 가족과 함께 즐거이 성묘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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