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에서 일본어 통역을 하던 김지영은 지리산의 견불동에서 전통장류업체를 하면서 사는 귀촌인이다. 대도시의 삶이 싫어서 내려온 류순영은 뱀사골 입구의 원천마을에 살면서 산야초와 새순을 따서 차를 덖는 일을 좋아한다. 군산이 고향인 송창해는 전주에서 아동요리와 음식문화해설을 하는 사람이다. 이영란은 전주의 한 물류업체 사장이지만 음식에 빠져서 소스를 통해 약선음식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지금은 전주에 살지만 진안사람 전종윤은 섬섬옥수로 꽃차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과 나는 스스로를 ‘지리산 동네부엌’의 부엌지기라 부른다. 생김새는 물론이고 태어나 자란 생활사도 다 다르며 하는 일도 음식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조금씩 다르게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벌써 다섯 달째 일요일마다 북쪽 지리산 실상사 앞의 동네부엌에 모여서 제철에 나는 식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고 밥상을 차려본다. 그리고 나눠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회의를 하고 자신들이 하는 일들에 깊이를 더해간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다른 사람들의 영역을 지켜주면서 같이 발전해나가자는 것을 원칙으로 할 뿐 다른 규칙 따위는 없다. 개성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일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은 그대로 살리되 서로 어우러져 크게는 그저 동네부엌의 부엌지기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에 우리는 추석을 앞두고 무슨 음식을 해볼까 고민하다가 송편과 삼색나물, 그리고 탕국을 끓여보기로 했다. 제사상에 놓는, 건더기가 많고 국물이 적은 국을 탕국이라고 한다. 탕국을 끓이자니 어떤 재료로 탕국을 끓일지 고민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어머니가 차리시는 명절 차례상만 봐와서 세상의 탕국은 다 우리 집처럼 끓이는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나중에 커서 보니 지방마다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탕국을 끓이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탕국을 끓이기 위해서는 사태나 양지머리 등 국거리용 고기를 사용한다. 근막과 같은 결합조직 적당히 있는 사태나 양지머리는 조금 질기지만 덩어리째 푹 고아 내면 깊고 시원한 맛을 낸다. 삶아진 고기를 깍둑썰기 하고 거기에 무와 두부를 소고기와 같은 모양으로 썰어 넣고 끓인다. 그러나 전북의 삶의 터전이었던 몇몇은 재료를 깍둑썰기 하지 않고 나박썰기를 한다고 하였다. 내 상식으로 탕국의 재료들이 나박썰기 하여 끓여진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탕국의 국물을 내는 것도 소고기거나 아니면 해물로 끓이고, 우리 집의 탕국 재료인 무 대신 토란이나 박속을 넣기도 한단다. 그래도 우리는 이 모두를 탕국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그날 조금씩 다른 탕국을 세 가지 끓여 보았다. 해안가의 사람들이 풍부한 해물을 이용해 끓이는 탕국, 때 마침 수확이 시작된 집 주변의 토란으로 끓이는 토란탕, 서울 중심의 소고기로 국물 맛을 낸 탕국을 각각 따로 끓여 맛을 보았다. 소고기는 양지머리를 이용해 푹 고아 끓였고, 건조된 해산물로 끓이면 해산물로 먼저 국물을 내서 끓이겠지만 그날 우리는 생해산물로 끓였기에 자칫 질겨지고 잡냄새가 날까 걱정되어 마지막에 넣고 끓여 해산물이 내는 시원한 맛을 최고로 끌어올려 끓였다. 모두 각자 재료에 맞는 맛있는 탕국이다. 각기 다른 특색 있는 재료로 끓여진 세 가지 탕국들에서 마치 서로 다른 우리가 모여 부엌지기로 하는 일들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모르겠다.
올 추석의 차례상에 올리는 탕국은 어떤 재료, 어떤 방법으로 끓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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