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부모님들은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합니다. 부모의 말을 귀 담아 듣지도, 순순히 따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온갖 뒷바라지를 해주어도 고마운 줄 모르고 불평만 한다고 하소연합니다. 우연히 KBS1 TV에서 ‘아침마당’의 세대공감, 여름방학의 추억(8.25 아침 방영)이란 시사교양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20대에서 70대 출연자들이 세대별로 어렸을 때의 여름방학에 대한 추억을 나누는 토크쇼였는데, 70대의 이상용씨가 6·25 후 서울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교실이 없어서 운동장에 금을 그어 반별로 나누어 놓고 산에서 다듬은 막대기로 운동장에 글씨를 쓰고 발로 지우며 공부했다고 합니다. 또 60대의 이학래씨가 호롱불 아래에서 숙제를 하거나 1원을 주고 겨우 사먹을 수 있었던 돌사탕 추억담 등을 20∽30대 출연자들이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수업시간에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수필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어렸을 때 맛있게 먹었던 개떡이며 밀 서리 등의 추억을 이야기 하면 아이들은 무덤덤하게 듣기만 할 뿐입니다. 아이들은 체험하지 않았던 이전 세상의 일들에 대해서는 관심이나 흥미가 별로 없습니다. 어쩌다가 제가 고향 친구를 만나면 으레 전번에 나누었던 어렸을 때 추억을 매번 되풀이하면서도 마냥 즐겁기만 한데 말입니다. 세상은 너무도 바뀌었습니다. 살아온 세월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몇 살 차이의 자녀 간에도 이질적인 세대 격차로 대화 단절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하물며 사회, 문화의 패러다임이 전혀 다른,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어른의 세계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농경사회와 산업화사회, 그리고 현재의 지식정보화사회를 넘나드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이해하는 것이 쉽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의 사고관이나 취향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기보다는 어른들의 학창시절 사고방식이 나이가 들면서 더욱 고착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현재 세상의 사고방식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어른들의 청소년 시절 사고방식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아이들과 세대 차이를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어른의 관점에서 아이들은 미성숙하기에, 훈육의 대상으로 바라보면 아이들과의 소통은 더욱 힘들어집니다. 아이들 세계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축소판이 아닌, 자기 나름대로의 세상을 형성해가는, 독립적인 인격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녀를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공감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정서적으로도 우호적인 소통과 지지가 뒤따라야 가능합니다. 상담교사인 저 역시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도저히 납득하지 못해 당황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저 입장으로만 아이를 훈육한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비행이 잦은 아이는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전혀 행동이 개선되지 않습니다. 아이는 정서적으로 감화[감동]되지 않으면 행동도 바뀌지 않습니다. 공감적 경청을 감성커뮤니케이션이라고도 합니다. 공감적 경청은 상대방의 말뿐 아니라 억양이라든지 표정 등을 통해, 상대방의 동기나 기분에 귀를 기울여 듣고 이해한 바를 자신의 의견을 섞지 않고 그대로 피드백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상담[대화, 소통]은 공감해주는 상담자[부모]가 경청해주면서 내담자[아이]를 정서적으로 지지해주어 아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녀의 잘못된 행동이나 습관을 바꾸기 위해 부모의 강압이나 체벌은 임시 처방에 불과하며, 특히 사춘기의 아이들에게는 반발이나 부정적 사고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행동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존재하기에 자녀의 사소한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들어주고 공감하는 대화로써 지지해주어야 합니다. 공감적 경청은 부모에게 인내를 요구합니다. 여름방학 가족여행이나 자녀와의 공감적 소통을 통해서 멘토로서의 부모님이 되시기를 희망해봅니다. 다음에는 ‘멘토의 의미’란 주제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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