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듯 함양에서 목회를 시작한지도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50대 중반. 사업을 정리하고 가족의 동의를 얻어 뒤늦게 시작한 신학공부와 목회자로서의 길로 들어선지도 어언 11년.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다. 모두가 기피하는 농촌목회에 첫발을 딛게 된 것 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이 길은 자신이 원해서 가는 길이 아니라 전능자의 강력한 부르심에 의해서 가는 길이라고 해서 다들 소명(召命)이라고 부른다. 그러고 보면 나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50대 중반. 가정이나 사회적으로 이미 감당해야 할 몫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창조주의 뜻을 쫒아 새로운 길.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내 생각이 아니라 그 분의 뜻을 쫒아 걸어 온 길이다. 나름대로 산전. 수전 공중전 백병전까지 치루며 살아온 삶이였기에 무슨 일이든 못 감당할까보냐 라고 생각하며 달려온 길이였지만 뒤돌아보니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용케도 잘 견뎌온 것 같다. 12시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4시면 일어나. 교인들을 모셔와 같이 새벽기도를 드리고 말씀을 묵상하며 이런저런 교회 일과 성도들의 삶을 돌아보며 교회의 자립을 위해 가축(닭)을 키우며 유정란을 수거하여 택배를 보내고 우리밀 국수를 주문하고 공급하는 일도 일과 중의 하나다. 이것을 자립 목회. 자비량 목회라 한다. 도시교회나 큰 교회의 도움을 받아야만 교회나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는 것이 오늘 날 농촌 미 자립교회의 현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싫어 스스로 자립하고자 노력하였다. 공예배로는 주일 낮 예배와 주일 오후 예배. 수요일 저녁 예배. 그리고 금요 철야예배 등이 있으며 사예배로는 심방예배로 병환 중이거나 이사. 개업. 길흉사 등 수시로 교인들의 가정과 생업현장을 찾아가 함께 위로하며 축복하며 동고동락해야 한다. 교회 공동체는 영적인 가정과 같아 믿음의 형제자매라 부르며 희로애락을 같이 한다. 더 나아가 지역사회와도 무관하지 않다. 마을의 길흉사에도 참여하고 의료봉사. 안경 맞추어드리기. 영정사진 찍어드리기. 노모당. 경로당 돌아보기 및 자연보호와 환경운동. 시민운동 등 감당해야 할 몫이 넓고도 크다. 어저께는 이곳생활 10년을 통해 함께 교회를 중심으로 만났던 소중한 분들과 식사자리를 마련하여 정담을 나누었다. 몇 10명이 되지 않지만 10여 명씩 나누어 몇 차례 자리를 갖기로 했다. 그곳에는 귀농인도 있고 예술인도 있고 장애인도 있고 외국인도 있고 젊은이 늙은이 아이 딸린 주부들도 있고 듬직한 중년도 있다. 교수. 공무원. 농부. 직장인. 상업인 등 다양하다. 목사라는 직책이 불특정 다수인을 구별 없이 만나야하다 보니 다양하게도 만난다. 누구를 만나든 머피의 법칙이 마감되고 셀리의 법칙이 전개되길 기도한다. 최근에 교인 두 분의 장례를 치러드렸다. 한 분은 50대 직장인으로 퇴근길에 집으로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로 숨졌다. 가족과 함께 현장에 나가 불안에 숨죽이고 있는 그들을 대신해 현장을 확인하고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집례하고 합의와 보상 문제까지 협의하였으며 또 한분은 94세의 할머니로 호상이긴 하지만 가족이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 모두 한마음으로 장례를 집례하고 할아버지의 묘를 이장하여 같이 화장한 후 합장하여 집 부근 밭에 평장으로 모셔 드렸다. 그리고 두 가정에서는 남아 한명과 여아 한명이 출산하는 기쁨도 있었다. 한가정은 셋째를 낳고 한 가정은 넷째를 낳았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이 시대에 참 귀한 일이다. 함양 땅에는 65년 경. 한 때 125.000명의 인구를 자랑했는데 지금은 고작 외국인을 포함해 41.000명에 머물러있다. 이제 또 두 사람의 생명이 촌각에 달렸다. 한분은 고령이고 한분은 아직 젊은데 간암 말기로 온 몸에 암세포가 전이되어 입원 중이라 수시로 병원을 찾아가서 위로하며. 그에게 살고 죽는 것보다 더 중요한 영생에 대한 소망을 전하여주며 평안을 안겨주었다. 병든 저들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며 생에 무엇이 중요한 가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된다. 신약성경 야고보서 1장 15절은 말씀하기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다. 인간의 욕심은 모두를 망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죽음의 길로 인도한다. 내겐 소박한 꿈이 있다. 자급자족과 더불어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같이 나누는 일이다. 며칠 후. ‘농어촌교회 생산자 협의회’ 창립총회를 갖는다. 정직하게 먹거리를 생산하고 창조질서를 회복하여 탐욕으로 가득 찬 이 땅을 살리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이 땅은 잠시 왔다가 머물다가 본향(本鄕)으로 가는 정거장이며 우리 모두는 나그네 인생이다. 이러한 생명의 진정한 의미와 소중함을 깨달아 자연을 살리고 인간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살리고 저들을 사랑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이일을 위해 우리를 이 땅에 보내 주셨다. 오늘도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주의 섭리와 인간의 생사화복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자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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