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잠자리는 날개를 활짝 펴고 벽에 붙어있다. 며칠째 꿈적도 하지 않는다. 그 모습 그대로 육신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다른 세상으로 길을 떠난 것이다. 잠자리의 마지막을 지켜본 것은 나였을까. 팔랑팔랑 날갯짓을 하며 잠자리가 날아들었을 때 단순히 가을이 깊어가는 구나 생각했다. 녀석의 주검을 보며 주위를 둘러보니 가을바람 속에 겨울의 냉기가 묻어 있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는 계절이 된 것이다. 저 잠자리도 헌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 어김없이 소멸한다. 그리고 소멸은 또 다른 탄생을 가져 온다. 그렇다면 소멸하고 탄생 되는 그 과정의 중간쯤은 어디일까. 문득 용추사의 명부전(冥府展)이 떠오른다. 명부전은 이 세상에 저승을 재현한 곳이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안의면 상원리에 있는 용추사를 다녀왔다. 용추계곡에 들어섰을 때 콸콸거리며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다. 물은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면서 밑으로만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어떤 생명을 가진 존재 같았다. 어쩌면 전설 속에 나오는 이무기가 수용(水龍)이 되어 계곡을 휘저으며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용추계곡에는 이무기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무기는 108일간 금식 기도를 올리면 용이 될 것이라는 신령님의 말을 믿고 기도를 시작했다. 온갖 고난을 겪으며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한지 107일째 되는 날 용이 될 것이라는 기쁨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날짜를 잘못 계산한 것이었다. 그때 하늘의 천둥과 벼락이 이무기를 때렸다. 결국 이무기는 용이 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정말 그러할까. 하지만 눈에 보이는 형상이 때로는 진실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산길을 휘휘 돌아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곳에 높은 담벼락이 보였다. 담벼락을 따라 올라가니 용추사의 요사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산사의 규모는 그리 작은 편이 아니었다. 먼저 대웅전을 찾아 삼배를 올리고 명부전에 들어섰다. 전각은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하며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곳이다.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 곳이므로 지장전이라고 하고 시왕을 모시 곳이므로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은 도리천에 살면서 미륵불(彌勒佛)이 출현하기까지의 무불(無佛)시대에 중생을 교화·구제하는 보살이고. 시왕은 128개 지옥을 나누어 다스리는 어둠 세계의 왕들이다. 내부는 어두웠다. 눈동자가 조금씩 어둠에 익숙해지며 목조로 조성된 지장시왕상(地藏十王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0호)이 눈에 들어왔다. 지장보살상을 중심으로 좌측에 도명존자상(道明尊者像). 우측에 무독귀왕상(無毒鬼王像)으로 구성된 삼존과 그 좌우에 시왕상이 각 5구씩 배치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심판관인 시왕 앞에 서니 오금이 저렸다. 저승에 온 사람처럼 덜컥 겁이 났다. 모두들 죄업을 나타내는 거울에 비추며 나의 죄를 바라보는 듯 했다. 짧은 시간 동안 지난날의 많은 일들이 스쳐갔다. 세상을 살아가며 착한 마음보다 나쁜 마음을 더 품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마음속으로 참회의 말을 중얼거렸다. ‘앞으로 바르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명부전에서 나는 약속했다. 잠자리의 허물을 바라본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금의 육신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라지는 허물일 뿐이다. 저 녀석은 ‘죽음’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치며 새 삶을 찾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잠자리를 향해 속삭인다. ‘부디 좋은 몸 받아서 좋은 세상 구경 하여라.’ 문득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속삭임이 환청처럼 들린다. 사라질 허물을 뒤집어쓰고 나는 지금. 명부전에서 했던 약속을 잘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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