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계사년으로 53년생의 환갑년이다. 환갑을 맞은 부인과 6.20~6.25까지 중국여행을 다녀왔다. 시안에서 박애학교를 운영하는 왕국평 이사장의 초청으로 시안. 함양. 천수天水. 청수淸水를 둘러보았다. 인천공항에서 시안국제공항까지는 3시간 거리다. 첫날 시안신라상무호텔에서 염창용 시안교민회장. 이근택부회장등 여러 교민들과 만찬을 했다. 그 자리에는 29일 방문하는 박근혜대통령 일행의 통역봉사요원으로 선발된 한국 유학생3명도 참석하였다. 새벽에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 창밖을 보니 아침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아침6시부터 9시까지 서민들을 위해 개설되는 재래시장이었다. 시장구경을 하면서 동그랗고 납작하게 생긴 복숭아. 양귀비가 좋아했다고 자랑하는 과일과 꿀떡. 두부국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9시가 되니 상인들은 각자 판매대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철시했다. 떠난 후 지저분한 것이 지적되면 다시는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한다. 10시경 감수성 천수시로 향했다. 산시성 시안에서 감수성 천수까지는 380여 km인데 여러개의 터널을 통과했다. 긴 것은 14km나 되어 길다고 했더니 중국에는 18km의 터널도 있다고 했다. 천수시는 감수성의 성도로 인구370만명의 도시다. 천수시에서는 중국인문시조인 복희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중국에는 우리의 단군처럼 3황5제를 모시고 있다. 천수시는 우리를 초청한 왕국평 이사장의 고향으로 왕국평의 배려로 천수시 인민정부 비서장인 미만평이 오찬을 주재해주었고 우리가 감수성을 떠날 때까지 직원으로 하여금 안내를 하게 했다. 천수시에서 복희축제를 구경하고 다음날 청수시로 갔다. 3황5제중 최초의 황제인 헌원황제의 탄생지다. 청수시에서는 유천파 당서기가 직접 안내하고 만찬을 베풀어 주었다. 청수는 헌원황제 동상이 있는 넓은 광장과 후한 조충국장군 기념공원 그리고 청수박물관을 구경했다. 조충국장군은 평균수명이 40여세인 당시에 70이 넘도록 장수하면서 2명의 왕을 보필한 명장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조충국장군공원에는 1.800kg가 넘는 대청도광비大靑道光碑와 국보급인 석가모니 탄생도가 그려진 비가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송나라때 보행규칙을 새긴 비석이었다. 길을 갈 때는 신분이 높은 사람을 만나면 비켜주고(賤避貴). 나이 많은 사람이 우선하고(少避老). 가는 사람은 오는 사람에게 양보해야한다(去避來)는 내용이었다. 청수시는 미려청수美麗淸水를 구호로 내걸고 있는데 온천이 유명하여 중국 13대 온천지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청수 온천에서 하루 밤을 지냈다. 시안은 중국 고대 7개 왕조의 서울로 장안이란 이름으로 불려왔다. 중국 고대 여러 왕조의 수도였음에도 외국기업의 진출이 늦었다. 최근 한국의 삼성전자가 일차적으로 70억불을 투자하는 등 총200억불을 투자할 계획이며 협력업체 100 여개가 입주할 계획이어서 기대가 크다고 했다. 시안은 진시황의 여산능. 병마총.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휴양지인 화청지 등 천년 중국왕조의 살아있는 역사라 불리는 지역으로 전체가 하나의 유적지라 할 수 있다. 화청지에는 세계적인 장이무 감독이 연출하는 양귀비 연극이 공연되고 있다. 종루가 있는 시내 중심지에는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서양거리와 회교도 거리가 구획되어 있다. 회교도 거리는 중국 전통시장이다. 그곳에는 클린턴 미국대통령 등 외빈들이 오면 들리는 유명한 덕발장(德發長)이란 만두집이 있는데 1인분이 10만원으로 비싼 곳이라 구경만하고 다른 곳에서 먹었다. 회교도거리는 중국고유의 진귀한 상품들을 싸게 살 수 있어 여행사를 통한 단체 여행객에게는 관광코스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곡강에 있는 생태식당은 건평이 6천여평으로 동시 수용인원이 5천명이나 되는 대규모였다. 식당의 내부에는 각종 진귀한 수목들이 가득 했다. 특이한 점은 돈 많은 사람만을 위한 고가의 음식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1인당 8~9천원의 음식도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식당내부를 구경하면서 식사하도록 하고 있었다. 함양은 시안과 인접한 도시다. 시안국제공항도 행정구역은 함양이다. 항우와 유방이 진나라를 멸망시킨 후 왕족을 모두 죽이고 함양 시가지를 불태워 고도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으며 아방궁 등 옛것의 재현 노력을 하고 있다. 미국의 사학자 다니엘 코오엔(Daniel Cohen)는 “고대 왕릉의 비밀”에서 진시황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진시황은 확실히 신비에 쌓인 인물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나 성경에 나오는 사탄같이 신화적인 존재라고 본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실상 이 세상에 살았던 실존 인물이다. 시황제는 왕족의 피를 이어받은 일조차 없다고 하며 여불위란 거상의 사생아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중국사상 최강의 통치자가 되었던 것이다.’ 진시황은 살아서는 백성에게 고초를 준 사탄이었다면 죽어서는 돈벌이를 시켜주는 화수분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도 진시황의 유물을 보려는 사람이 돈 들고 줄지어 기다린다. 여행기간 동안 대한민국 함양과 중국 함양의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했지만 가치 있는 자료를 입수하기 어려웠다. 야사이긴 하지만 두 개의 함양은 여러모로 진시황과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함양과 한국의 함양은 지명이 같고 한자도 같다. 불로초를 구하러 온 곳이 함양 지리산이다. 시황제는 전국을 순행할 때 제(齊)나라 서시(徐市)라는 사람으로부터 바다가운데 봉래. 방장. 영주라는 삼신산에 장생불로하는 불사약이 있다는 말을 듣고 구해오도록 했다. 서시일행이 동해로 나가 먼저 제주도에 들렸다가 그 곳을 떠나 불로초를 구하려 찾아온 곳이 지리산 추성계곡의 서암동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함양 여씨는 모두 여불위라는 영걸의 후예라고 한다. 항우와 유방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항우가 진나라 수도 함양을 불사르고 진나라 왕족을 모두 죽일 때 진시황의 큰아들 부소(扶蘇)의 아들인 몽공(夢公)은 원元의 성을 가진 충신의 보호를 받으며 비밀히 탈출하여 요동땅을 거쳐 조선땅에 망명해왔다. 몽공은 진시황의 친 아버지인 여불위의 성을 따라 여몽공이라 칭하고 경상도 성주(星州)와 함양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기록은 찾지 못하고 구전되고 있을 뿐이다. 다만 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인에게 동질감이나 감흥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됨은 틀림없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