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마천면 가흥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은 안국사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며 신라 태종무열왕 3년에 행우(行宇)가 창건하였다. 이후 조선 초기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몇 차례의 전란을 겪으며 불태워지고 다시 중건되기를 반복하여 지금에 이른다. 안국사 무량수전의 화사한 단청은 여름날의 땡볕을 튕겨내고 있다. 빛들이 하얗게 부셔진다. 그 빛이 부셔서 눈을 감는다. 그 때. 손안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통화를 누르니 십년지기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디냐고 묻는 말에 절에 왔다고 한다. “너 무슨 힘든 일 있니?” 무어라고 해야 할지 말문이 막힌다. 절에 오면 힘든 일이 조금은 쉬워지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세상사가 힘들어서 온 것 같기도 한데 딱히 그것만이 이유가 아닌 듯 하다. 이런저런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나중에 다시 통화 하자며 작별의 인사를 한다. 나는 왜 절에 온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절에 오면 마음이 편안하다. 절간에는 고요가 가득하다. 그래서 아주 고요한 상태를 ‘절간처럼 조용하다’라는 표현을 쓴다. 고요의 한 가운데서 내 입과 머릿속의 생각을 닫으면 산사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러고 보면 나는 산사의 ‘말없는 법문’을 들으러 온 것이다. 나는 무설설법(無說說法)을 듣기위해 적요를 밟으며 마당을 거닌다. 담장이 보인다. 담장 너머를 바라보니 산천이 펼쳐진다. 안국사가 자리 잡은 곳이 제법 높은 모양이다. 산사의 설법은 아직도 들리지 않는다. 무량수전의 격자문 앞에 선다. 검은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법당 중앙에는 목조아미타불(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4호)이 좌정해계신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을 설파하는 부처님이다. 얼굴은 네모지고 턱은 둥글며 뺨은 통통하다.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어 자비로워 보인다. 정확한 제작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조선 후기의 다른 불상들이 지니는 일반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불상이라고 여기고 있다. 머리의 보관에 아미타불을 새긴 관세음보살(문화재자료 제 429호)과 대세지보살이 좌우보처로 모셔있다. 관세음보살은 자비문을 관장하고 대세지보살은 지혜문을 상징한다. 삼존불은 적적성성(寂寂醒醒)에 잠겨 있다. 적적성성! 깊은 고요 속에서 깨어있으라는 뜻이다. 가부좌를 하고 삼존불의 삼매를 흉내 낸다. 눈을 감고 배꼽 아래 있다는 하단전을 바라본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어느 순간 주위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나라는 존재도 사라진다. 무어라고 설명할 수 없는 아늑함과 따스한 느낌이 가슴을 적신다. 봄볕 같은 따사로운 빛이 주위를 감싸며 나를 비취어 주는 듯 하다. 그리고 감겨진 눈으로 잊혀 진 기억의 한 자락이 보인다.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장면이 바뀌고 깊은 동굴 같은 곳에 아름다운 빛이 보인다. 저 빛은 무엇일까? 알고자 하는 욕심이 스며드는 순간 개 짖는 소리가 의식을 가르며 달려온다. 숲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나뭇잎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적적성성은 사라진다. 하지만 짧은 낮잠 속에 단꿈을 꾼 듯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아 세속의 시끄러운 일들이 사소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눈앞의 물질에 집착하여 욕심을 내며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의 명상으로 욕심이 사라진 것일까. 아니다. 긴 세월 동안 욕심을 모으며 살았기에 한꺼번에 욕심을 마음에서 몰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의 내면에는 스스로를 완전하게 만들 수 있는 빛이 있다. 잠깐이라도 그 사실을 믿고 내면의 빛을 바라보면 어떨까. 어쩌면 잠시잠깐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어제보다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삼존불을 바라본다. 말없는 법문을 마친 부처님의 미소가 아까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아마 염화미소(拈華微笑)를 짓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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