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금대봉 숲길을 푸른 바람과 함께 오른다. 하얀 길은 늙은 할머니의 허리처럼 굽어져 있다. 한참을 갔을까. 가파른 언덕에 파란 대나무 밭이 보인다. 점점이 흩어져 있는 하얀 망초 사이에 키 작은 석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경남 유형문화재 제35호인 부도(浮屠)다. 석조물은 까만 그림자를 꼭 끌어안고 서 있다. 모두 4기이다. 2기는 행호조사(行乎祖師)의 사리와 유골을 봉안한 것이고 다른 2기는 금송당(琴松堂)과 서상대사(西上大師)의 사리를 봉안한 것이다. 다시 가파른 길을 오른다. 높은 곳에 담이 둘러 있다. 마천면 가흥리 지리산에 있는 안국사(安國寺)에 도착한다. 안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산사입구에서 커다란 백구(白狗)가 어설렁 어슬렁 눈치를 보며 나를 맞는다. 나도 백구의 눈치를 살핀다. 저 녀석이 도둑으로 알고 덤비면 어쩌지? 속으로 겁이 난다. 백구에게 손을 흔들며 최대한 온화한 미소를 짓는다. 내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녀석도 꼬리를 내리고 절집으로 안내한다. 안국사에는 또 다른 부도가 있다. 은광대화상(隱光大和尙) 부도탑(경남 유형문화제 제337호)이다. 부도는 사각형의 바탕 돌 위에 받침돌을 놓고. 몸체와 지붕돌을 얹은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인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으로서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안내문이 있는 곳까지 가보았지만 부도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숲 속으로 소롯길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은광국사 부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발길을 돌린다. 아마 쉽게 만날 인연이 아닌 것 같다. 부도는 스님의 사리와 유골을 안치한 탑이다. 신라 하대부터 보이기 시작했던 불교 유적으로 경전 위주의 교종에서 선종이 들어오면서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석조물과 달리 그 주인공의 생애와 행적을 새겨 놓았기에 당시의 사회상과 문화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때도 있다. 사리는 참된 수행을 하면 생긴다고 한다. 그럼 부도의 주인은 부처가 되었을까. 대품경(大品經)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자를 부처라고 부른다’라고 적혀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면 깊은 마음이 보인다고 했다. 옛 성인들은 이 깊은 마음을 지심(至心) 혹은 묘심(妙心)이라 부르기도 했고 양심(良心)이라고도 불렀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 숲 어딘가에서 산새소리가 들려온다. 여름날의 땡볕이 마당에 내려앉아 있다. 잡초 하나 없는 하얀 마당은 적요가 가득하다. 마치 커다란 침묵의 덩어리 같다. 요사채 앞에 핀 능소화가 화사하다. 저 주홍빛이 적요에 색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산사의 침묵을 바라보는데 왜 아픔의 시절이 생각날까. 삼십대 후반. 나는 지독한 질병에 허덕였다. 기약 없는 아픔을 겪으며 참 많이 울었다. 칠흑 같은 어둠의 터널을 지날 때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시간을 견디는 것뿐이었다. 아픔의 시간은 침묵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 동안 마음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나의 내면은 성장했다. 한참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침묵의 시간을 깜박깜박 잊고는 한다. 산사의 아름다움은 침묵에 있다. 삶도 절집에 가득 찬 침묵처럼 아무 일 없이 흘러갈 때가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도 침묵이 필요하다. 나를 낮추고 잠시 입을 다물다 보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수행이란 조용히 침묵하며 자연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깊은 마음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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