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을 방문했다. ‘세계전통의학엑스포’ 준비가 막바지에 이른 동의보감촌은 마무리되지 않은 마지막 손길이 분주하고. 개막에 다다른 촉박함을 그대로 전달했다. 가장 근접한 이웃 동네에서 열리는 45일간의 긴 일정 속에 과연 우리에겐 어느 정도의 이익이 있을까라는 얄팍한 계산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숙박정도와 식당이 모자라면 우리 동네로 와서 관광객이 뿌리고 가는 파급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혼자만의 생각을 하고 있던 터. 담당자의 설명은 조금 달랐다. 굳이 억지로 숙박을 목적으로 건물을 신축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 예산을 오히려 효과적으로 엑스포 운영에 썼다는 것인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옆의 동네에서 행해지는 국가적인 행사에 우리 동네의 이익을 슬그머니 점쳐 본 나의 속내가 사뭇 부끄럽고 요즘 우리 사회의 논쟁이 되었던 갑과 을의 관계가 불쑥 떠올랐다. 옆의 동네에서 행해지는 국가적행사 엑스포를 통해 이익반사를 좀 누려볼 수 있지 않을까는 구도를 주최 측의 이익과 옆으로 삐져나온 이익을 거대 갑과 약자 을로 대비를 시켜보았다. <갑과 을의 나라>의 저자 강준만교수는 탁월한 인물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항을 일으켜 온 인물이다. <갑과 을의 나라>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어온 갑과 을의 구조를 분석하고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구조적 사회의식을 심층적으로 펼쳐 보인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다. 책 속의 내용만큼이나 절실하고 각박하게 다가온 우리사회의 구조적 의식을 개혁할 만한 답답함이 옆의 동네 행사를 빗대어 유추해본 게 다소 무리라 할지라도 갑과 을의 관계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가 않았다. 요즘 우리 사회는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저녁식사 시간대에 내보내는 드라마는 자녀들과 보기 민망한 괴롭힘과 복수가 사정없이 나오고. 거대 이익을 내는 기업이나 단체의 비정한 갑과 을의 전쟁으로 참담한 일들이 벌어지고 너나 할 것 없이 그럴듯한 명분으로 울타리를 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재주를 부리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승자는 “나는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가장 확실한 거짓말을 뻔뻔하게 내뱉고 패자들은 “믿을 놈 없다”고 핏대를 올리고 있다. 거짓말이 들통 나도 내가 한 거짓말은 “착한 거짓말”이라고 포장해대는 놀라운 순발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어떤 것이 착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분간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조금이라도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갑과 아무 말 없이 듣고 따라야 하는 약자 을의 관계구도가 보여주는 함축된 사회현상이다. 문제가 되는 갑과 을의 관계에서 그 어느 누구도 거짓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인간의 속내란 마치 구정물통 같아서 고요할 땐 맑은 물이 떠 있지만 막대기로 휘저으면 온갖 추한 것들이 다 떠오르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를 스스로 파악하는 것이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함에 있어서 염치를 갖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려 한다. 염치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과 경쟁한다면 그 결과는 뻔한 일 아니겠는가! 갑과 을의 관계구조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이치가 한 쪽의 잃어버린 이익균형과 흡사하게 닮아있다. 갑과 을의 경쟁사회에서는 일단 이익을 쟁취하면 모든 게 해피엔딩이다. 온갖 찬사를 동원하여 과거를 세탁해주고 주변까지 미화시켜 주는 이들이 줄을 서기 때문이다. 패자들은 승자의 횡포에 맞서기보다 “아더메치(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를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더 약한 자들에 화풀이 해댄다. 이렇게 “갑”과 “을”의 먹이사슬이 형성된다. “을”도 누군가에게 “갑”이 되는 것이다. 이 지독하고 치명적인 모순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고대 철학자의 말처럼 나 자신을 아는 현명함이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따질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이 시대의 왕따가 되더라도 수단과 방법만큼은 가리며 사는 것이다. 옆의 동네 엑스포가 열리는 현장을 돌아보며 우리 동네의 이익유출을 흐뭇하게 기대감상하다 우리 사회의 앗! 뜨거 하는 갑과 을의 관계구도를 다시 새겨본다. 그리고 명심해본다 약자 “을”도 누군가에겐 거대 “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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