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 백사장 해수욕장 앞바다에서 실종된 고교생 5명은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어른들의 돈벌이 욕심과 안전 불감증이 꽃다운 청소년들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공주 사대부고는 여행사인 K사를 통해 안면도유스호스텔과 캠프 계약을 했다. K사는 계약을 성사시키고 중간에서 학생 1인당 1만∼2만 원씩의 수수료를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유스호스텔 측에서 캠프운영을 위탁받아 이를 한영T&Y에 재 위탁했다. 한영은 K사에서 영업을 담당했던 김모씨가 회사를 나와 차린 업체다. K사는 지난해엔 A사에 재 위탁했다. 해병대 캠프는 전국적으로 20여 곳의 군소업체들이 경쟁하며 학교들을 나눠 유치했으나 올해부터는 K사가 대부분을 싹쓸이한 뒤 한영에 몰아줘 업계의 불만이 팽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불법과 자기이익에 급급하던 캠프일 줄은 어떻게 알았겠는가? 사고는 18일 오후 4시 40분에서 5시 사이에 발생했다. 10명씩 줄을 지어 바닷속으로 걸어가던 공주대 사범대 부설고 2학년 남학생 80명 가운데 앞서가던 23명이 갑자기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모래사장에서 바닷속으로 300m가량 들어간 지점이었다. 이들은 갯골(거센 물살이 지나가는 바다 갯벌에 파인 깊은 골)에 발이 빠지거나 강한 파도를 맞고 물속으로 빠졌다. 이들은 ‘한영 T&Y’가 주관한 해병대 캠프에 이날 입소한 2학년 198명 가운데 일부였다. 이들은 조별로 보트 노 젓기 훈련을 마친 뒤 모래사장으로 나왔다. 그 후 한 교관이 프로그램에 없던 지시를 했다. 다음 조 노 젓기 훈련을 할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벗고 바다로 수영을 하러 들어가라고 한 것이다. 그때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물살이 크게 몰려오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사고 당시 무자격 교관들이 머뭇거리는 동안 오히려 허우적거리는 동료 학생들을 구하려 물 속 뛰어든 것은 숨진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교관이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끝내 차디찬 시신으로 발견된 이준형 군은 친구를 물 밖으로 밀어내다 목숨을 잃었다. 자신을 희생한 어린 학생들. 기본적인 안전수칙마저 무시한 어른들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세상에 아깝지 않은 목숨이 어디에 있겠는가마는. 채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생명이 스러졌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그 부모들의 극렬한 아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해 더 견디기 어렵다. 아이들을 죽이고 부모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한을 남긴 것은 구명조끼 없이 바다에 뛰어들라는 부당한 명령만이 아니었다. 더 직접적인 것은. 그에 후속된 무모한 집단적 순응이었다. 시쳇말로 ‘까라면 까는’ 것이 군인정신의 정수이자 남성다움의 본령이라는 믿음이었다. 국민들에게 ‘자발적으로 순응하는 신체’를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근대 국민국가의 주요 특징이고. 군대가 그런 신체를 만들어내는 가장 효율적인 기구였던 것도 보편적 현상이지만. 식민지 근대는 개인의 자발성을 극도로 왜소화하고 일방적 순응만을 요구했다. 학교 교육에서 남녀 불문하고 ‘온순 착실한 성격과 방정한 품행’만을 요구하던 일제가 ‘박력’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조선인을 침략전쟁에 동원할 준비에 착수하면서부터였다. ‘밀어붙이는 힘’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명령에 따라 앞뒤 가리지 않고 돌격해야 하는 말단 보병에게나 어울렸지만. 곧바로 남성성을 표상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더불어 오랫동안 남성성을 대표하는 정신이자 태도였던 기개와 지조는 성가신 개념이 됐다. 부정한 권위에 맞서고 부당한 명령에 불복하는 것은 비국민적 악덕으로 재배치됐다. 식민지 원주민들을 기개 없는 박력. 지조 없는 돌격정신을 지닌 제국 군대의 사병으로 만들기 위한 유효한 수단이 무자비한 구타였다. 태안에서 고등학생 5명이 참사를 당하기 며칠 전. 서울 노량진에서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도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지하에서 일하라는 부당한 명령에 순응한 사람들이었다. 태안 사고는 노량진 사고의 과거상이고. 노량진 사고는 태안 사고의 미래상이다. 아이들의 아픔! 어찌 사랑하던 친구를 잃은 아픔뿐이겠는가? 어른들의 부도덕성과 무책임의 아픔은 아이들이 평생 지고가야 할 마음의 아픔일 것이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