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더위 먹는 병)으로 고생하던 성종이 38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폭군 연산군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8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라 방탕과 사치. 패륜 등으로 점철된 삶 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분노 외에도 연산군을 몹시 괴롭힌 것은 하초가 부실하여 생긴 소변불리(小便不利)와 소갈증이었다고 전해진다. 연산군 8년 12월의 <승정원일기>에는 연산군이 북경으로 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수박을 구하여 오게 하라는 명을 승정원에 내렸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수박을 갈아 만든 즙과 껍질에 소변을 잘 보게 하는 이뇨작용이 있으며 소갈증을 없애주는 효능이 있으므로 평소에 수박을 즐겨먹던 연산군이 겨울이 되어 수박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생각해낸 궁여지책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수박에 함유된 칼륨은 혈액 내의 염분을 끌고 나가는 작용을 하므로 나트륨 섭취가 문제인 현대인들에게 아주 좋은 과일이며 수박에 함유된 배당체는 이뇨작용과 함께 강압작용이 있고. 수박에 함유된 단백효소는 급만성신염. 간염 등을 치료하는데 유용하다. 서과자로 불리는 수박의 씨도 생으로 먹거나 볶아서 먹는데 성미(性味)가 달고 서늘하며 독이 없으므로 먹어도 탈이 없을 뿐 아니라 소화기를 튼튼하게 하며. 폐에 열이 있어 생기는 기침이나 소갈. 장이 건조하여 오는 변비. 혈변을 보는 증상. 고혈압 등에 사용하면 좋다. 최근에는 수박을 재배하는 기술이 좋아져서 당도는 물론이고 그 크기도 어마어마하여 한 통 사오면 상하지 않게 다 먹기가 쉽지 않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껍질까지 나물로 해먹기도 하였지만 요즘은 가족의 수도 적어 수박 한 통을 다 먹기란 쉽지 않으니 그럴 땐 남은 수박을 갈아서 즙으로 만들어 먹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수박의 모든 가식부는 성질이 무척 차므로 소화기가 허약하여 설사를 자주 하는 사람은 적게 먹어야 하고 몸이 차고 수분대사가 원활하지 못한 사람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좋다. 수박은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지만 <연산군실록>에 이르러서야 수박의 재배기술이 기록된 것을 보면 연산군의 수박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연산군이 즐겨했던 수박의 모양과 맛은 광주의 무등산에서 종자개량이라는 발전적인 변화 없이 옛날 방식 그대로 노지에서 재배되고 있다. 출하시기도 하우스에서 재배하여 그야말로 제철에 나오는 거의 유일한 수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겨울에 먼 중국으로부터도 수박을 가져다 먹고 싶었던 연산군에게 신하들은 대체로 먼 곳의 기이한 음식물도 억지로 가져오는 것이 불가하다며. 수개월이 걸리는 노정에 반드시 상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반대를 하였다 한다. 이 일화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제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 하여도 제철에 나는 음식을 먹어야 함과 동시에. 자기 고장 인근에서 생산되는 음식만을 먹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연일 비가 오락가락하여 습도가 높아 유쾌하지 않다. 습도가 높을 땐 인체도 부종 등 수분대사에 문제가 생긴다. 습하고 무더운 날에 찾아온 귀한 손님에게 수분대사를 원활하게 해주는 수박을 대접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나 잘라놓고 드시기를 권하면 씨를 빼면서 먹기가 여간 성가시고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더 지혜롭게 수박을 시원한 즙으로 만들어 한 잔 낸다면 대접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 모두 즐겁고 편한 대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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