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리 석불상림(上林)은 여름의 녹음이 가득하다. 푸른 숲길을 따라 가다 이은리(吏隱里) 석불(石佛.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를 만난다. 원래 망가사(望迦寺)에 있었다고 한다. 합장을 하고 돌부처와 눈을 맞춘다. 높이 1.8m. 신체 하부와 대좌가 없으니 마치 앉아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석불은 어떻게 하체를 잃어버린 것일까. 수인(手印)을 잃어버리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일까.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다. 감겨진 눈으로 시간의 징검다리를 건넌다. 아련히 사람들이 보인다. 동화책 속에서 보았던 옷차림이다. 절집도 보인다. 현판에는 망가사라 쓰여 있다. 나는 시간의 강을 건너 고려시대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톡. 톡. 톡……. 어디선가 돌 깨는 소리가 울린다. 흰 수염을 늘어뜨린 석공이 커다란 화강석에 붙어 정 머리에 망치질을 한다. 저 커다란 돌 속에 부처님이 숨어 있는 모양이다. 석공은 숨어있는 돌부처의 모습을 정확히 찾아낸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두광(頭光)을 찾아내고 신광(身光)을 찾아낸다. 두광에는 두 개의 동심원을 새긴다. 작은 원은 좁고 넓은 연판을 반복하여 조각한다. 신광 좌우에는 고사리 모양의 초화문(草花文)을 새긴다. 한 달이 지나자 상호가 드러난다. 반개한 두 눈은 옆으로 길고. 입은 작다. 상체와 하체가 모습을 드러난다. 이제 옷자락의 주름을 잡는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버린 것일까. 돌부처는 검은 금강석의 거북좌대에 서 있다. 어깨는 큰 머리에 비해 좁다. 상호가 넓적하고 귀가 길쭉하니 크다. 소박한 미소를 입 꼬리에 머금고 있다. 못생긴 형상이다. 아니. 사람을 닮은 순박한 모습이다. 이마 가운데의 백호(白毫)에서 금방이라도 눈부신 기(氣)가 뻗어 나올 것 같다. 사람들이 그 앞에서 합창을 한다. 절을 올린다. 그리고 소원을 빈다.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이 낙엽을 몰고 다닌다. 낙엽이 거북좌대 앞에 가득 쌓여 간다. 왜일까. 망가사에는 아무도 없다. 스님도 공양주도 모두 떠나 버린 모양이다. 깜박 깜박 졸음이 온다. 잠깐 눈을 감았다 떤다. 그런데 절집의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주불을 잃은 거북모양의 대좌만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텅 비어버린 산사 터에는 뻐꾹새 소리만 가득하다. 거면 마을 냇가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린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망가사 석불이 그곳에 누워 있다. 허나 온전한 모습이 아니다. 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중생에게 희망을 전해주던 수인도 찾아 볼 수 없다. 희미해져버린 눈매와 닳고 닳은 코가 보인다. 소박한 미소도 흔적이 없다. 대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흙속에 묻혀 있었단 말인가. 사람들이 상림 숲으로 돌부처를 옮긴다. 거북모양을 한 좌대는 암반과 한 덩어리라 제자리에 둘 수밖에 없다고 한다. 같이 가면 좋으련만. 인연은 더 이상의 돌부처와 거북의 동행을 허용하지 않는다. 돌부처는 상림 숲 깊은 곳에 홀로 자리를 틀고 앉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가며 ‘이은리 석불’이라 부른다. 어떤 사람은 그냥 지나치고. 또 어떤 사람은 공손히 합장을 한다. 상림에 연꽃이 피고 진다. 상사화가 피고 진다. 세월이 물처럼 흘러간다. 바람처럼 흘러간다. 그렇게 돌부처는 상림의 풍경과 함께 곱게 늙어간다. 매미 소리가 소낙비처럼 쏟아진다. 매미가 나를 불렀던 것일까. 다시 시간의 징검다리를 건너 21세기로 돌아온다. 아름다운 여행이 끝이 난 것이다. 매미소리 자지러지게 울려 퍼지고. 갈색 지빠귀 울음을 운다. 수 백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이 시각. 이은리 석불과 마주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그 해답을 안다면 생의 의미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인(因)과 연(緣)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합장을 한다. 오래된 돌부처를 남겨두고 자박자박 숲길을 걷는다. 여름날의 땡볕을 헤치며 참나무를 지나고. 함 화루(咸化樓) 지난다. 그리고 인연의 해답을 찾아 상림을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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