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둔하고 식탐많은 뚱이 5학년. 영리하고 심술 많은 술이 5학년. 우유부단하고 고집 센 깡이 2학년이 보온물통을 갖고 다투는 성민의 등교장면을 소개합니다. 아이들의 다툼보다 중간에 개입을 해서 아이들을 설득하는 이모의 침착함과 합리적인 대화장면이 너무 닭살도 돋고 대견하기도하고 해서 대화의 내용을 가감없이 그대로 적어봅니다. 학교에서 시원한 물과 얼음물을 둘 다 먹고 싶은 뚱이는 어제 저녁 고집이센 깡이에게 보온물병을 빌립니다. 뚱이는 깡이가 빌려준 보온물병에는 보리차를 담아 냉장실에 넣고 자기 보온 물통에는 얼음물을 얼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뚱이가 2개의 물병을 들고 등교하는 것이 못마땅한 술이가 깡이에게 물병을 자기에게 빌려 달라고 합니다. 깡이는 평소에 뚱이보다 술이를 더 좋아하기에 어제 저녁의 약속은 아랑곳 하지 않고 뚱이에게 자기 물병을 돌려 줄 것을 요구합니다. 이미 자기의 보온 물통은 얼음이 얼어서 시원한 물을 마시지 못하는 뚱이는 깡이에게 부당성을 주장하며 물병을 돌려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깡이와 뚱이의 논쟁에 담당이모가 자초지종을 듣고 보온 물병은 뚱이에게 빌려주는 게 맞다고 하자 깡이의 고집이 시작됩니다. 이에 힘을 얻은 뚱이가 깡이에게 “니 그라모 안된다. 한번 빌려주기로 했으면 빌려줘야지 그라는 게 어딨노? 치사하게.” 하며 깡이의 염장을 지릅니다. 깡이가 반격을 합니다. “뭐가 치사하노? 내 꺼니까 내맘이지 형아가 뭔데 그러는데. 나는 술이 형아 빌려줄끼다.” 이어지는 뚱이와 깡이의 논쟁에 그만 뚱이가 대성통곡을 하며 웁니다. 상황이 이쯤되자 이모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깡아 어제 저녁에 너 뚱이 형한테 보온 물병 빌려주기로 했지?” “예” “그래서 뚱이 형이 자기 보온물병에는 얼음을 얼렸지?” “예” “그래서 니 물병에 뚱이가 물을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서 시원하게 만들었지?” “예” “그러면 뚱이에게 보온물병을 빌려줘야 하는 게 맞다고 보는데 니 생각은 어때?” “나는 술이형아 빌려줄꺼예요.” 그러자 이모는 술아에게 “술아. 이미 깡이가 뚱이에게 물병을 빌려준다고 약속을 했으니 니가 양보하는게 어때?” “싫은데요” “너는 이미 시원한 물이 한병 있잖아?” “저도 두 개 가지고 가고 싶어요.” “.......” “깡아. 사람이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할까? 아니면 지키지 않아도 될까?” “지켜야 해요.” “그러면 어제 뚱이에게 니가 뭐라고 약속을 했어?” “물병 빌려준다고 약속했어요.” “그러면 뚱이에게 물병을 빌려줘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니 생각은 어때?” “싫어요. 술이형아한테 빌려줄꺼예요.” “......” “술아 아무래도 니가 양보하는 게 좋겠는데?” “ 아~~ 싫어요. 진짜. 짜증나.” “......” “깡아. 만약에 깡이가 착한 일을 해서 이모가 깡이에게 특별용돈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어. 그러면 그 약속은 이모가 지켜야 해. 안지켜도 돼?” “지켜야해요” “그러면 니가 뚱이에게 약속을 했잖아. 그것도 지켜야하지 않겠어?” “싫어요. 안할꺼예요.” “........” “그러면 앞으로 이모가 너한테 약속을 해 놓고 안지켜도 돼?” “아니요. 지켜야해요.” “그런데 너는 왜 약속을 안지키려고 해?” “저는 술이 형아한테 빌려줄꺼예요?” “......” 상황이 이쯤되자 술이가 “저. 물병 안가져갈꺼예요.” 하고 슬그머니 한 발짝 물러섭니다. 이모는 깡이에게 “깡아. 술이가 물병 안 가져간다고 하는데 니 물병 뚱이에게 빌려줘도 돼?” 하지만 이미 화가 날대로 난 깡이는 “싫어요. 안 빌려줄꺼예요.” 하며 한 치의 물러섬도 없습니다. 그러자 이모가 “그러면 이 물병은 어떻게 할까?” 하고 묻습니다. “집에 가져가요.” “......” 술이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물병을 차지하지 못하게 된 뚱이는 더 큰소리로 웁니다. 이모의 결론이 내려집니다. “그러면 오늘 이 물병은 집으로 가져간다. 알겠지?” 그러자 뚱이의 대성통곡은 더 격렬하게 성민의 아침 등굣길을 심란하게 합니다. 매일 크고 작은 일들로 되풀이 되는 아이들과 이모들의 일상입니다. 화가 나서 큰소리를 낼만도 할텐데 이모의 대응이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고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저희의 현실을 대변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실 저 같으면 “이노무 짜슥들” 하면서 술이의 심술을 나무라고 깡이의 의견을 무시하고 뚱이에게 물병을 빌려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해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는 뚱이와 깡이. 술이. 그리고 이모 중에서 어떠한 유형의 사람인가를 말입니다. 물병 하나를 두고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이 저에게는 많은 생각을 던져준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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