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기 마음의 눈에 따라. 같은 현실이라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를 보게 된다. 물이 반쯤 차있는 컵을 두고 ‘이제 겨우 반 잔 밖에 남지 않았네’라며 염려와 걱정부터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반잔이나 남았네’라며 다행스럽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반잔이라는 동일한 상황인데도 이처럼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고난과 시련을 거뜬히 잘도 넘기는가하면 어떤 이는 조그마한 어려움도 감당하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으로 일을 망치거나 좌절과 절망으로 낙심하고 포기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다시 말해 삶을 행복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항상 행복하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불행해지기 마련인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삶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라는 문제는 전적으로 자신이 결정할 몫이다. 전국시대 일본 역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이들은 일본 안에서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회자된 인물로 서로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인물들을 통해 역사적 변환기에 끝까지 살아남아 대업을 이룰 수 있었던 처세술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인물인 오다 노부나가는 성격이 불과 같은 다혈질이며 두 번째 인물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지략에 능하고 꾀가 많은 인물이며 세 번째 인물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느긋한 성격으로 대기만성형의 인물이었다. 울지 않는 새를 놓고 세 명의 성격을 비유한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는 가치가 없다’며 새를 죽여 버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떻게 해서든지 새를 울게 하려고 새 앞에서 재롱을 떨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언젠가는 네가 울겠지’하고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죽은 순서도 성질 급한 대로 죽었는데 오다 노부나가는 49세에 부하의 기습을 받아 자결을 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62세에 죽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75세에 죽었다고 한다. 자고로 천하통일을 이루려고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만사. 인생사는 새옹지마에 대기만성이라고 했다. 나쁜 일이 생겨도 곧 좋은 일이 오고. 과정이 느리더라도 결과는 창대하게 될 것을 믿고 나가는 자가 지혜로운 자다. 성경 누가복음 9장25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끝까지 참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자가 최후승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역에도 거듭되는 선거와 급변하는 시대흐름으로 말미암아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세상인심이 편을 갈라놓아 자기편만이 옳다고 아웅다웅하고들 있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지치게 만든다. ‘하늘은 말이 없다’는 속담도 있듯이 참된 진실은 그렇게 서로 부딪히고 다툼을 일삼는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 한 세상 살아가는 지혜가 그렇게 어려울 턱도 없다. 성경 로마서 8장28절에서 이르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라고 하였다. 오늘 우리 눈앞에 보이는 당리당락과 이해관계에만 매이지 말고 진실 된 마음으로 멀리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하다하겠다. 중국에서는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말로 ‘세상만사 새옹지마(世上萬事 塞翁之馬)’란 말이 있다. 지금 좋아 보이는 일이 훗날에 나쁜 일의 단초가 될 수도 있고 지금 나쁘게 여겨지는 일이 훗날에 좋은 일로 바뀌어 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는 변방(邊方)에 사는 노인(老人)의 말이라는 뜻으로. 세상만사(世上萬事)는 변화가 많아 어느 것이 화(禍)가 되고. 어느 것이 복(福)이 될지 예측(豫測)하기 어려워 재앙(災殃)도 슬퍼할 게 못되고 복도 기뻐할 것이 아님을 이르는 말이다.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늘 바뀌어 변화(變化)가 많음을 이르는 말로 어느 날 이 노인이 기르던 말이 멀리 달아나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慰勞)하자 노인은 ‘오히려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고 말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한 필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축하하자 노인은 ‘도리어 화가 될는지 누가 알겠소.’ 라며 불안해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인의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걱정하며 위로하자 노인은 ‘이것이 또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며 태연하게 받아드렸다고 한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마을 젊은이들은 싸움터로 불려 나가 대부분 죽었으나. 노인의 아들은 말에서 떨어진 후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새옹의 늙은이가 그 말 때문에 길흉과 화복이 반복되어 일어나듯이 인간의 길흉화복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새옹지마의 이야기처럼 좋은 일이나 나쁜 일에 너무 가볍게 흥분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인간만사 새옹지마가 아닌가? 승리와 패배는 많은 경우 당사자의 생각과 마음에 의해 결정된다. 승자는 실수를 하면 자신이 잘못했다고 하지만 패자는 자기에게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승자는 고난을 겪으나 패자는 고난을 피하려고 한다. 승자는 실행하나 패자는 약속만 한다. 승자는 자기보다 우월한 사람에게 무엇인가 배우려고 노력하지만 패자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깎아 내리려고 한다. 승자는 더 나은 길이 있을 것으로 믿고 연구하나 패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쉽게 포기한다. 승자는 승리를 했어도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을 오히려 안타깝게 여기지만 패자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결코 못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로인해 패자에게는 항상 일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갈수록 꼬이기만 하는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이 따라다니지만 승자에겐 계속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일만 일어나는 샐리의 법칙(Sally`s law)이 따르게 되는 법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