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1차 고사를 치르는 중입니다. 3학년은 고등학교 마지막 시험이구요.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라는 전제 하에 대한민국의 중고등학교가 시험 기간만큼은 해가 훤히 중천에 떠 있을 때 아이들이 교문을 나섭니다. 그 때만큼은 아이들 표정이 참으로 살아 있고 밝아 보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만만치 않아 고등학생. 특히 고3은 하루 15∼16시간을 학교서 보내야 하거나. 심지어 일부학교(자율고. 특목고. 기숙학교)는 24시간 학교에서 생활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학교라는 울타리 밖의 성인세계가 엄청 매력적으로 보이고 뻥튀기해서라도 빨리 성인이 되고 싶어하는 시기에 말입니다. 최근 학교폭력. 청소년 자살과 더불어 학교 부적응 학생들의 학업 중도 포기가 늘어나는 비율과(10명 중 4명)함께 청소년 비행이나 사회범죄가 늘어난다는 우울한 얘기. 전국적으로 실시한 학생정서행동선별검사 결과가 미래 우리의 동량인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상의 문제를 결코 예사로 봐 넘길 수 없게 한다는 얘기. 우울. 불안. 자살 생각에 시달리는 학생들(10명 중 2∼3명). 또 그 중 두 세 가지 복합적이거나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까지 포함하면 학업 이전의 근본 원인을 돌보지 않고서는 학교생활이 어려울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학생들에게 도대체 학교는 어떤 의미일까`하는 의문이 새삼스럽게 일어나곤 합니다.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판단이나 문제해결이 미숙한 학생을 보호 해주고 건전한 성장을 돕기 위해 자양분을 제공하는 든든한 울타리일지 아니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고 하기 싫은 학습이나 규칙. 질서를 지키도록 강요하는 감옥 같은 곳일지... 인간이 지닌 자유의지를 최대한 발휘하도록 도와 잠재능력을 키워주는 곳인지. 다양한 성향을 지닌 학생들을 조직의 질서. 집단규칙이라는 것으로 묶어 넣고 획일과 정형을 요구함으로써 제각각 지닌 색깔과 향기를 죽여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많습니다.  체감하기로는. 아이들은 아이들이기에 아직 든든한 울타리로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고 과반수 이상의 학생들이 감옥까지는 아니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곳’이라는 의식이 더 많이 지배하는 공간이란 생각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학교라는 곳은 말 그대로 학습이 주를 이루니 학업성취가 제 나이에 맞게 이루어져 있지 않을 경우 수업시간은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 됩니다. 수업 시작 시간 지키고. 수업 시간 수업하기는 너무 당연해서 언급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교사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경우도 학교생활은 힘들어집니다. 그 다음 학생들과 부딪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집단생활의 규칙 지키기입니다. 결석. 지각하지 않기. 교복. 머리모양 학생답게 단정히 하기. 무단외출 하지 않기 등 이 부분도 기성세대로서는 일면 당연한 얘기인데 학생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갈등이 있는 것이지요. 집단생활은 그 특성상. 한 개인의 사정을 다 봐 주지 못하여 기본규정을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은 그 사회의 요구를 대비하여 미리 훈련해야 하고 학교가 일정부분 제 역할을 해 주어야 합니다. 어느 사회. 어느 집단에서나 규칙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현실은 ‘교육의 본질 외적인 문제’에 학생과 교사들의 노력을 너무 소진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의 본질은 한 개인이 건전한 가치를 바탕으로 바람직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내면을 변화시키는 사회화 과정이어야 하기에 자신을 통제하는 내면적 변화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잔소리하고 기다려 주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당장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근시안적인 생각 밖에 못하던 학생들이 그런 과정을 거쳐 사회의 규칙을 하나. 둘 깨달아 성인생활에 대비하는 그 자체가 바로 교육이고 아이들은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면 또 수용합니다. 그게 교육의 효과이기에 교사와 학생들은 학교생활을 하나의 학교 문화로서 즐겁게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 한 것 같습니다.  한때 저가(低價) 자본으로 크게 히트 친 영화 중의 한 장면이 적절한 비유가 될런지요. “써니” 라는 영화에서 테이프로 쌍꺼풀 만들기에 여념이 없던 장미와 담임샘의 화기애애한 대화가 생각납니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안 나지만 “개인 신상 발언 부당합니다.” “얘! 나는 니 부릅 뜬 눈이 더 부당해! ” 학생들이 와르르 웃습니다. 시절이 달라져서 주인공이 다시 그 선생님을 찾았을 때 마침 교무실 들어 왔던 쌍거풀 수술 한 학생을 불러 “응! (눈) 예쁘게 됐네” 하던 선생님.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입니다.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 전 세계로 활동영역을 넓혀야 하는 학생들에게 이미 철 지난 지식을 기계적으로 주입하려하고 결코 창의적이지 못한 지식을 단답형으로 묻고. 답하여 등수를 매기고 줄 세우는 경쟁교육. ‘학생 개개인이 앞으로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그 잠재된 가능성을 알아보기도 전에 뒤떨어진 학생을 탈락시켜 좌절시키는 교육이 되어서는 학교 본연의 역할로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영. 미의 교육이 도입되어 이제껏 그 중심을 이뤄 왔지만 이제 핀란드. 스웨덴. 네덜란드 등 유럽교육의 장점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으니 교육에 대한 큰 흐름. 밑그림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한 사회의 바람직한 구성원으로 자라나도록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협력하는 학교교육. 한 인간으로 독립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기간으로서 전문지식이나 삶의 지혜를 주고. 직업인으로 살아 갈 능력을 길러주며 학생 개개인이 지닌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곳으로서의 학교 교육. 교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미래를 대비한 진로선택을 위해 고민하는 곳으로서의 학교 교육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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