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함양군에는 전교생이 60명 이하인 작은학교가 10개 있다. 출생아 수 감소와 청년 인구 유출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읍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가 ‘작은학교’가 되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숫자가 작다고 해서 교육의 깊이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규모라는 특성을 살려 아이 한 명 한 명을 중심에 둔 교육이 가능한 곳, 그곳이 바로 작은학교다. 각 학교마다 저마다의 색깔을 담은 교육활동이 이어지고 있고, 아이들은 그 안에서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고 있다. 함양의 작은 학교 이야기를 통해 10개의 작은학교를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말>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휴천면에 자리한 금반초등학교다.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밝은 미소로 반겨주는 아이들, 어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 금반초의 다정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본다.산양과 함께 시작하는 특별한 아침아침 일찍 찾아간 학교 입구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특별한 친구들이 있다. 바로 산양이다. 금반초에서는 산양 목장을 운영하며 직접 키운 산양의 신선한 산양유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입구에서 만난 1학년 다혜는 작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를 아침식사 장소까지 안내해 주었다. “여기가 정말 초등학교 맞아?”라고 생각할 만큼 정갈하고 깔끔하게 차려진 아침식사 테이블 위에는 신선한 산양유와 다양한 빵, 시리얼, 과일이 가득했다.걱정 반 기대 반으로 마셔본 산양유의 맛은 정말 놀라웠다. 비린내 하나 없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매일 이렇게 건강하고 맛있는 아침을 먹는 아이들이 부러워질 정도였다.식사를 마친 후 찾아간 생태교육장 ‘우르르 목장’은 아이들의 웃음 버튼 같은 곳이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산양들과 어울리고 새끼 산양을 어루만지는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이 공간에서 아이들이 자연과 진정으로 공감하며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학교라서 가능했던 특별한 경험이 아닐까 생각하니, 금반초 아이들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른 학교들과 눈에 띄게 차별화된 학교중간놀이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운동장이 다른 학교에 비해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숲속 놀이터 같은 느낌이랄까. 어린이용 집라인과 트램펄린,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자전거를 타며 신나게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운동장을 신나게 누비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쉬는 시간조차 각자의 관심과 흥미로 채워가는 금반초의 특별한 교육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쉬는 시간 중 만난 5학년 친구와 나눈 대화는 금반초의 매력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 학교는 산양이랑 함께 지내서 좋아요. 산양유뿐만 아니라 치즈랑 아이스크림도 만들어볼 수 있거든요”라며 신이 나 자랑하던 아이.학교에서 지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하나 꼽아달라고 했더니 정말 특별한 이야기를 꺼내주었다. “작년에 우리가 직접 만든 ‘꿈꾸는家’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못질도 직접 했어요!”라고 말하는 눈빛에 자부심이 가득했다.실제로 금반초는 작년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집짓기 프로젝트’로 학교 한편에 아이들이 직접 목조주택을 지었다. ‘꿈꾸는家’는 2층 목조주택 형태인데, 학교에서 준공식까지 진행하며 새로운 꿈과 비전을 발표하고 참여자 이름이 모두 적힌 현판 달기 등을 진행하였기에 아이들이 쉽게 경험해 볼 수 없는 특별한 일이었을 것이다.아이들의 꿈과 노력이 깃든 특별한 공간인 이곳은 미리 신청만 하면, 주말 숙박도 가능하고 다양한 활동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라고.또 금반초의 독특한 프로그램 중 하나인 ‘1인 1출판’ 활동에서는 학생들이 실제로 책을 출간하고 있으며, 현재 교보문고에서 구입이 가능하고 판매 수익은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미 두 권의 책을 출간한 학생은 “제가 실제로 작가가 된 느낌을 받았어요”라며 자랑스럽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기자가 방문하기 며칠 전, 금반초에서는 ‘시골 아이들의 에티오피아 8개월 대장정 출정식’을 진행했다. 매년 진행되는 배낭 진로탐방 프로젝트로 올해는 에티오피아 탐방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학생들은 1년 가까이 직접 탐구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하니, 그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6월에는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의 방문이 있을 예정이라니, 이 얼마나 특별한 프로젝트인가?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관광성 여행이 아니라 1학기에는 에티오피아 국가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2학기에는 탐방지역과 인물을 중심으로 8개월 동안 학생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질문하며 탐구 중심의 체험활동으로 구성되는 장기 프로젝트이다.11월 예정된 11일간의 에티오피아 탐방을 8개월 동안 준비해서 배움과 나눔을 실천할 금반초 아이들의 설렘이 벌써부터 느껴지는 듯하다.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존재감 향상 교육’보통 아이들은 처음 본 사람은 낯설어하기 마련인데, 기자의 질문에 막힘없이 학교 자랑을 하며 대답하는 아이들이 정말 보기 좋았다. 아이들이 이토록 기자와의 인터뷰에 적극적일 수 있는 이유는 학교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존재감 향상 교육’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금반초는 ‘존재감 향상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마음의 힘, 관계하는 힘, 표현하는 힘이 곧 존재감이라는 믿음으로, 아이들의 모든 교육과정 속에 존재감 향상 교육이 묻어나게 하고 있다는 백종필 교장의 설명이 참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은 사랑받으며 존재감 있게 자라야 한다는 게 교장선생님의 교육철학이었다.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아이들이 입고 있는 단체복이었다. 개량 한복 스타일의 교복에는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지역 어르신들이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더 따뜻한 유대감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한다.어른들이 자신들의 손자를 대하듯 금반초 아이들을 대할 수 있도록 말이다. 금반초는 이번 어버이날 행사와 면민 체육대회, 학교 운동회를 같은 날 한 곳에서 진행하여 마을과 학교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동체적 교육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도 전했다.금반초는 또 학교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인 도담채를 강조하는 학교 홍보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순수하게 학교의 교육철학에 공감하는 가족들이 학교에 올 수 있도록 안내하고, 집이 필요하다고 하시는 분들에게 도담채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집이 있어서 이곳에 오기보다는, 우리 학교의 교육이 좋아 찾아오는 분들에게 집은 부수적인 혜택이 되어야 한다”라는 교장선생님의 철학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작은 텃밭 같은 학교의 가치교장선생님은 작은 학교를 텃밭에 비유하며, 큰 농장의 수확물보다 작은 텃밭이 수확물들이 주인의 살뜰한 보살핌 덕분에 더욱 싱싱하고 건강한 채소를 길러내듯 작은 학교가 아이들에게 더 정성스럽고 건강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하셨다.도시의 큰 학교들은 지식적인 면에서는 시골의 작은 학교 아이들보다 앞설지도 모르겠지만, 작은 학교 아이들의 정서적 탄탄함은 어느 큰 학교의 아이들보다 뒤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작은 텃밭에서 길러지는 채소 같은 금반초 아이들의 미래가 진심으로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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