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에 대형 화분을 열 몇 개 구입했습니다. 앞마당 펜스를 따라 장미를 심으려구요. 블루베리 등 농업용으로 많이 쓰이는 조립식 화분이라 녹화마대로 한땀 한땀 엮어 화분 둘레를 씌우느라 정성을 많이 들였습니다. 그런데 흙을 채우는 일이 만만찮았습니다. 감나무 과수원에서 삽으로 퍼오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비용은 좀 들지만 상토를 사서 채웠습니다. 삽질하다 허리가 부러지는 것보다는 났다는 현실적인 판단이었지요. 상토에는 식물에 필요한 영양성분이 골고루 들어있다고 표기되어 있더군요.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화분에 상토만으로 심은 장미는 전혀 자라지를 못했습니다. 문제는 물이 너무 빨리 빠지는 것입니다. 장미 같은 꽃나무뿐만이 아니고 일년초도 수분관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아게라덤은 물을 아무리 자주 줘도 돌아서면 시들했습니다. 할 수없이 다시 흙갈이를 하게 되었는데 마침 장미전용상토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일 수입품인데 가격이 일반상토의 서너배 정도였지만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보였고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장미의 고장인 유럽에서, 장미 전문가가, 장미를 위해 만든 전용상토이니만큼 화단이나 땅에 심은 보통 장미에 비해 훨씬 잘 자랄 것이고 꽃도 풍성하게 필 것이 틀림없습니다. 투자할 가치가 있어 보였습니다. 장미를 키우려면 의외로 정성과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인기 있는 품종은 대부분 유럽 수입 장미라 묘목을 구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장미 가드너가 자랑하듯 추천하는 인기 있는 장미는 고급 백화점에서 명품을 사기 위해 오픈 런 하듯 구입부터 경쟁이 치열합니다. 이렇게 어렵게 구입한 귀한 장미인 만큼 키우는데 정성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요. 하지만 명품장미라고 해서 모두 꽃도 화려하고 향기도 좋고 내병성이 강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만족하고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잘 키우려면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장미전용상토로 모두 흙갈이를 하고 나니 비실비실하던 장미가 요술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쑥쑥 자라났고 앞 다퉈 화려한 꽃을 피워 정말 투자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라는 결론이 나야 해피 앤딩인데, 유감스럽게도 장미는 오히려 더 비실거리고 병이 들었습니다.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화분을 하나 엎어보니 이번에는 수분이 너무 안 빠지는 게 문제였습니다. 설상가상 장마가 한 달 이상 이어져 상태를 더 악화시켰습니다. 급한 대로 땅에 옮겨 심을 수 있는 것은 옮겨주고 화분에서 계속 키울 것은 화분을 엎어 장미전용상토를 버리고 마사토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트럭에 마사토를 직접 싣고 오니 장미전용상토 한 푸대 값도 안 드네요. 정원 일은 정성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돈으로 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더니 한 번에 할 일을 세 번 하고 있습니다. 장마 끝나고 불볕더위가 시작 되는 한 여름 휴가철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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