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의례를 진행한다. 오늘 아침 내게 맞는 커피는 캡슐인가, 핸드 드립인가, 캡슐이라면 이스탄불인가 리우데자네이루인가를 견주다가 마음이 가는 쪽을 택해 커피를 내린다. 커피를 내리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새벽의 의례다. 그동안 이런저런 글에서 이 루틴을 두고 ‘마치 의례처럼 진행한다’고 썼지만 이 ‘의례’를 ‘인문잡지 한편’의 <중독>에서 ‘세속적 의례’라는 용어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관욱은 <중독>의 ‘담배 참 맛있죠’ 라는 글에서 세속적 의례란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건을 마주친 개인이 사건 자체가 아니고 그 사건에 대한 경험의 의미를 변화 시키고 통제하는 수단을 가리킨다고 하면서 ‘신이 아닌 자신을 소중히 모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 세속적 의례가 나의 의례儀禮와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의례依例적으로 마시는 커피가 일상의 기호嗜好가 아닌 중독인가, 의심은 하게 된다. 김관욱은 다시 데이비드 코트라이트의 글을 인용하며 설탕과 커피와 담배와 술, 도박, 게임, 쇼핑 등의 중독은 ‘변연계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변연계는 느낌이나 신속한 반응을 담당하는 뇌의 특정부위를 가리키는 용어로 쾌락, 동기, 장기기억, 생존에 필수적인 정서적 기능을 가능하게 한다면서 자본주의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변연계를 자극하는 상품과 행위를 생산해 왔다고 각주에 덧붙였다. 이에 더하여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가 <설탕과 권력>에서 제시한 ‘드러그 푸드’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당시 서구유럽에서 설탕, 카페인이 함유된 홍차, 커피가 노동자의 배고픔을 달래주며 적절한 영양 공급없이 더 큰 노동력을 자극하는 ‘약물’과도 같은 식품으로 확산되었으며 이에 대한 연구결과로 ‘드러그 푸드’라는 용어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담배 참 맛있죠’의 주요어인 변연계 자본주의와 드러그 푸드와 세속적 의례를 연결시키면서 중독에 어른거리는 인간사회의 각양각색의 현상을 떠올리니 의미심장하다. 금연을 외치면서 담배를 생산하고 금연의 수단으로 담배 값을 올리는 것. 단짠이 넘치는 음식과 빵과 과자를 손에 쥐게 하는 마케팅, 마트에 진열된 술병들과 진을 치고 있는 술집들, 이를 부추기는 SNS를 비롯한 미디어와 콘텐츠들, 그 중에서도 현대인의 시간과 사고를 장악하고 있는 스마트폰은 인간의 삶을 조종하는 기계기술이 변연계 자본주의의 첨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던 것이다. 김관욱 은 중독은 의학으로 정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중독은 사회문제이다. 그래서 인문잡지 한편이 이 문제를 다루었을 것이다. 극성을 부리는 유튜브 프로보커터들, 진위여부를 막론하고 비상식적이고 자극적인 극단의 영상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유튜브 구독자들도 중독 현상에서 비켜설 수 없을 것이다. 중독의 광범위와 위험성을 아는 사람들은 자신을 통제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취약성을 드러낸다. <인문잡지 한편>이 아니었다면 <중독>의 인문학적 연구를 간과했을 것이다. <중독>에는 김관욱 외에도 음악평론가, 여성학연구자, 임상심리전문가, 정신건강학과 전공의, 솔로워크 CEO, 번역가 등의 글이 실려 있다. 사회의 문제적 중독 현상을 연구결과로 인지하는 것과 막연하게 중독은 나쁜 것이라는 단순한 인지는 다르다.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특히 인문학적 지식과 사고를 겸비해야 한다. 인간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통찰하지 못하고서 어떻게 리더의 역할을 하겠으며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문적 시선 없이 누구 앞에 설 수 있겠는가. 삶과 앎은 지척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다는 것은 위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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