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무게가 장난이 아닌 신형 무선청소기를 구입하면서 역시 무게가 장난이 아닌 진공청소기 먼지통 자동처리기를 업어왔다. 무선청소기를 사면 이십만원 정도하는 먼지통 자동처리기라는 것을 공짜로 끼워준다고 해서 생각 없이 받아왔는데 막상 가져와서 보니 후회가 되었다. 아무리 봐도 필요 없는 것을 공짜라고 괜히 받아온 것 같았다. 그렇다고 비싼 것을 버리지도 못하고 누구 주지도 못하고 일단 다락에 올려놓았는데 한마디로 계륵이었다. 누군가는 잘 사용하고 있겠지만 이게 도대체 왜 필요한 거지? 다락을 오르내릴 때마다 자리만 차지하고 나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이 물건을 처리해야겠다며 투덜댔다. 먼지통을 그냥 휴지통에 비우면 10초내 끝낼 일을 왜 번거롭게 자동 먼지통 비우기라는 물건을 통해서 (자동으로?)비워야 하는 거지?? 이 황당한 먼지 처리기는 유선청소기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천 봉투가 장착되어 있어서 먼지가 차면 그것도 교환해줘야 하니 바보 같은 방식으로 먼지를 비우기 위해 소모품을 정기적으로 구입하고 갈아줘야한다. 초일류 전자제품 메이커에서 이 바보 같은 물건을 만들어 팔고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걸 어떻게 버려야하나 고민하다가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반년 이상 다락에서 잠자던 이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럽고 무겁고 비싸고 우스꽝스럽고 거창한 물건을 내려 전기 코드와 뚜껑을 제거하고 꽃화분으로 쓰기로 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정밀한 배수 시스템을 가진 화분이 될 것이다. (화분 하단에는 SAMSUNG 이라는 로고가 새겨져 있음) 엊그제가 함양 장날이라 크로커스랑 수선화를 한 판 사가지고 왔다. 이 첨단 화분에 두 포트 정도는 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기발한 화분이 크기에 비해 활용 효율이 턱없이 낮아 아쉽기는 하지만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화분이 될 것이다. 크로커스 구근을 심으면 어울릴 것이다. 올봄 첫 번째 꽃을 삼성전자에서 개발한 첨단 화분에서 피워보리라는 기대에 가슴이 설레었다. 그런데 당장 실행하기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구근이라지만 날씨가 너무 춥다. 심으려는 구근은 화원의 온실에서 관리해온 것이고 새순이 이미 손가락 한 두 마디 크기로 올라와 있기 때문에 지금 심으면 순이 얼어버릴 것이다. 이번 주 그리고 다음 주에는 엄천골짝이 영하11도까지 곤두박질친다고 하니 아무래도 삼월 초까지 인내해야 할 것 같다. 올 겨울은 유난히 길어 예술(?)하기 참 쉽지 않다. 장미농장에서는 1월부터 장미 주문받는다고 문자를 보내 설레게 하더니 장날엔 꽃모종이 너무 일찍 나와 봄을 기다리는 사람 애를 태운다. 봄아~ 봄아~ 어서 와라~ 안 오면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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