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면 잘 나가는 식당 하나가 골목을 살리는 것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어둑어둑하고 침체돼 있던 골목이 사람들로 붐비고, 한 집이 잘되면서 옆집도 같이 잘되는 모습을 보면 흐뭇했다. 함양의 여러 골목 중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되고 밝아지고 변화되길 기대했던 곳을 찾으라면 재래시장 골목이 아닐까. 이곳이 도시재생사업으로 옛것과 새것의 조화로운 옷을 입고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고 있다니 기대가 크다.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기도 전 재래시장 골목에 미리 등불을 밝히고 사람들을 모으고 있는 숨은 맛집 하나가 있다하여 유심히 봐왔다. 이곳은 테이블도 몇 개 되지 않는 작은 생고기집이다. 4년 전 개업을 하더니 문을 연 순간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구 함양군새마을금고 자리 건너편에 위치한 생고기집 ‘청진’이다. 아차 하는 순간 지나칠 수 있으니 간판을 잘 보고 가야 한다. 이 장소는 오랫동안 머물면서 여러 주인을 거쳤다. 누구는 몇 개월, 누구는 1년, 인수하는 사람마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하지만 2017년 4월 ‘청진’이 간판을 걸고부터 이곳은 지금껏 손님이 북적인다. 작은 식당 하나가 골목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청진’은 하영주(59), 이승주(55) 부부가 운영한다. 아내 이승주씨가 음식을 준비하고 남편 하영주씨는 주방보조를 자처한다. 음식 외 식당의 모든 일을 남편이 한다고 보면 된다. 식당을 처음 하게 된 부부, 특히 집안일만 했던 이승주씨는 떨리는 마음으로 가게를 시작하면서 매일매일 고민하고 연구했다고 한다. “음식은 무엇보다 정성이죠. 정성과 함께 중요한 것이 손님이 맛있게 드실 음식을 연구하는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고기에 어울리는 한상차림을 위해 수십번 음식세팅에 변화를 주며 테스트를 했다. 미리 상을 차려보고 음식의 색과 맛이 조화로운지, 고기와도 어울리는지 눈으로 확인했다. 부족한 것은 채우고 과한 것은 버려가며 메뉴를 정한 뒤 실제 손님상에 놓이게 했다. “고깃집이라고 해서 고기만 먹고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음식이 맛있어서 손님들이 젓가락질을 부지런히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연구한 끝에 하나씩 추가된 메뉴는 불판 옆에 빼곡히 쌓이게 됐다. 가죽, 뽕잎, 머위, 곰치, 옻순, 제피잎, 고구마줄기 등 장아찌는 번갈아가며 손님 상에 내놓는다. 청진의 장아찌를 먹은 뒤 누구에게나 원픽이 될 녀석은 고구마줄기장아찌가 아닐는지. 아삭함이 살아있는 고구마줄기 장아찌는 다른 곳에선 맛보기 힘들 것이다. 이 외 콩나물, 고사리나물, 꽈리고추볶음, 감자조림, 호박꼬치 또는 브로콜리 두부무침이 기본으로 나온다. 이 반찬들은 이승주씨가 매일매일 새로 만든다. 하루치 쓸 양만큼 만들고 다음날엔 재사용하지 않는다. 손님상에 나가지 않았으면 하루쯤 지난들 어떠할까 싶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노”라고 답한다. “김치는 직접 담근 김장김치를 쓰고 반찬은 그날 만들어서 그날만 손님 상에 올라가요” 하나둘도 아닌 반찬을 매일 만들어내는 것이 번거롭겠지만 그녀는 참기름향이 그득하고 따끈한 볶음반찬 맛을 살려 손님 상을 차려내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반찬을 내놓을 때도 되도록 칼이나 가위를 쓰지 않는다. 고사리나물이든 김치든 길이 그대로를 살려 길쭉하게 접시에 담아낸다. 반찬을 잘라내면 손님 상에 내 놓기 전 음식에 손을 댄 듯 하여 그녀는 그것도 싫다 한다. ‘너무 길어 먹기 불편하면 손님이 직접 잘라 드시도록’ 까다롭고 까탈스럽게 음식을 준비하니 손님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그 맛을 본 손님들은 단골이 되고 그 소문이 서울까지 퍼져 있으니 식당 테이블은 항상 만석이다. 주인이 이윤을 적게 남기면 손님에게 드릴 것이 많아진다는 이승주씨. “다 해 주고 싶어요. 우리 가게 그 맛이 생각나서 오셨다는 분들에게요” 반찬거리가 넘쳐나는 봄을 가장 좋아한다는 그녀의 꿈은 손님들과 함께 늙어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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