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 그리고 겨울이다. 가을은 없다. 엄천강 건너 법화산은 아직 단풍들 생각도 하지 않는데 기습적으로 겨울이 들이닥치니 당황스럽다. 다음 주 쯤 곶감 깎을 감을 수확하려고 놉을 구해놓았는데 기습적으로 된서리가 내려 감나무 이파리가 종잇장처럼 바삭거린다. 과수원에는 하얀 서릿발이 성성하다. 서릿발이라는 말 그대로 서리가 하얀 버선발을 내밀고 서 있는 듯하다. 날씨가 예사롭지 않아 어제 마지막으로 텃밭의 야채를 거두었다. 가지는 크고 작은 것 가릴 것 없이 모두 거두었다. 작은 것은 먹을 것이 없어 보이지만 맛은 작은 것이 더 좋다. 오이, 고추, 민들레, 부추... 등등 얼어 못 먹게 될까봐 보이는 대로 다 거두었다. 이제 겨우 시월 중순인데, 절기상으로도 상강이 되려면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첫 서리가 너무 심하게 내리는 바람에 곶감 깎을 감 수확에 비상이 걸렸다. 감은 유감스럽게도 텃밭의 야채처럼 미리 수확할 수가 없다. 곶감용 감은 무서리 한두 번 맞혀야 맛이 좋은데 상강 전후로도 상당히 굵어지기 때문이다. 시월 중순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것은 67년만이라고 한다. 가을이 사라진 것이다. 아침 마당은 서리로 하얗게 덮였다. 노란 산국과 보라색 벌개미취가 밤새 떨며 방전되었다가 아침 햇살로 충전하고 있다. 앞마당에 보이는 감나무 이파리는 잘 견뎌낸 것 같아 속으로 안도했는데 웬걸 감나무 과수원에 달려 가보니 괜찮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 잎이 시들시들해 보인다. 잎이 시들어 버리면 감이 더 굵어지기는 글렀기 때문에 홍시가 되기 전에 서둘러 거두어 들여야 한다. 일정을 앞당겨 감을 수확해야 하는데 놉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시골에 감을 잘 따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수확 시기가 같기 때문에 모두들 내 감 수확하기에 바쁘다. 콤바인으로 벼 수확하듯 감도 기계로 수확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감은 손으로 또는 긴 전지가위로 하나하나 수확해야 한다. 기술이 발달하여 로봇이 감을 수확하고 드론이 저온창고까지 옮겨주는 상상을 해보지만 현실은 사람이 힘들게 수확해야 한다. 그리고 일할 사람 구하는 것은 더 힘들다. 한 사람이 하루에 수확할 수 있는 감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지난해에는 나를 포함한 남자 4명이 이틀 동안 130상자를 수확했으니 평균으로 치면 남자 한사람이 20상자 따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감을 잘 따는 사람은 두 배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수확할 감나무의 높이와 결실 상태에 따른 변수도 크다. 올해 감 작황은 작년에 이어 좋지가 않다. 감은 해거리를 하기 때문에 통상 한해 작황이 안 좋으면 그 다음해엔 풍년이 들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두 해 연속 흉작이다. 이것이 우리뿐만이 아니고 이웃 그리고 감을 생산하는 전국 농가가 모두 그렇다. 이게 다 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 탓이다. 가을이 없어졌는데 농사가 잘 될 턱이 없는 것이다. 감 수확 일정을 당겨 며칠 내 고종시는 모두 수확해야한다. 비록 풍년은 아니지만 거두고 나면 이상 기후로 고생한 감나무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거름도 줄 것이다. 허리 숙여 절이라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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