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에 안 쓰는 물건들은 정리하고 나니 힘써서 방귀라도 뀐 것처럼 시원하다. 언젠가는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미련 때문에 버리지 못해 붙들고 있던 것들을 이번에 싹 처분하고 나니 정작 남은 것은 전동드릴, 그라인더, 망치, 펜치, 피스, 못, 톱 등등 공구 몇 가지가 전부라 헛웃음이 나온다.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한 창고에서 필요한 물건을 찾는 일은 일종의 오징어게임이었는데, 어딘가 숨어있는 드라이버라도 하나 찾으려면 차라리 새로 사는 것이 더 빠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버릴 거 다 버리고 선반을 새로 만들어 공구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나니 같은 물건 두 번 살 일은 없게 되었다. 이 창고는 원래 창고로 지은 것이 아니었다. 20년 전 아내랑 온돌방을 만들려고 벽돌을 쌓았는데 허리높이 쯤 올리니 배가 나와 할 수없이 미장공을 불러 마감했다. 어쨌든 아궁이, 굴뚝도 만들고 온돌방을 완성했는데 사흘 나흘 불을 때어도 방이 전혀 따뜻해지지 않아 그냥 창고로 쓰고 있다. 그동안 쓸데없이 창고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가장 큰 물건은 테이블이었다. 목 자재 남은 것들이 아까워 못을 박아 테이블을 만들고 창고에 넣어 두고는 겨우 김장할 때 사용하는 커다란 대야들을 올려두는 용도로 사용해왔다. 남은 자재가 아깝다고 버리지 못해 창고만 좁게 만드는 아무 쓸모없는 물건을 만들어 붙들고 늘어진 것이다. 십년쯤 전 기계화 영농사 교육을 받고 수료기념으로 커다란 공구세트를 선물 받았는데 여기서 필요한 것은 정작 망치, 드라이버, 펜치 정도고 각종 정밀 공구들은 농부에게는 용도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선물 받은 귀한 것이니까 개봉도 하지 않고 여태 가지고 있는데 이건 누군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 주려고 따로 챙겨놓았다. 트럭 타이어 휠, 교체하고 뜯어낸 분전반, 자투리 배관, 주택 바닥 모서리용 걸레받이, 20리터 물통, 교환한 전구, 녹슨 낫 (무려)여섯 개, 녹슨 톱 한개, 망가진 경첩..... 언젠가는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던 것들, 기억조차 안 나는 온갖 잡동사니까지 버리며 왜 내가 이걸 붙들고 있었지 하고 반성했다. 벌써부터 창고 정리 한번 해야겠다고 마음만 먹고 있다가 실행에 옮긴 것은 아버지랑 같이 귀감을 만들겠다고 서울에서 내려온 작은 아들 때문이다. 아들과 같이 사용해야할 공간이라 정리를 해야만 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며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것들이 눈에 보이는 창고 속의 잡동사니 뿐만은 아니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들에 목숨 걸고 사는 게 우리 보통 사람들의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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