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사소했다. 곶감 덕장 앞이 좁아 경사진 곳에 축대를 쌓고 땅을 약간 넓혔는데, 그곳은 원래 차가 접근하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장비가 어렵게 겨우겨우 들어가서 조심조심 축대를 쌓고 소중한 공간을 창조했다. 덕장 앞 공간은 택배차가 항시 드나들고 곶감 작업을 시작하는 가을부터 겨울에는 내 트럭이 수시로 들락거리기 때문에 이번 공사로 제일 기뻐한 사람은 우리 집에 오는 택배 기사였고 나는 그 다음이었다. 작업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산 아래 첫 집이라 큰 차가 올라와서 돌을 부릴 여건이 되지 않았기에 소형 세렉스를 불러 반나절 돌을 나르고 나서야 장비가 축대를 쌓기 시작했고 그렇게 확장된 공간에 레미콘 타설하고 끝. 했는데 슬그머니 다른 욕심이 생겼다. 내친 김에 주택 앞까지 넓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틀 작업을 해보니 축대 쌓는 일이 생각했던 것처럼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큰돈이 들어가는 일이라 며칠 고민 고민하다가 결국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이번 구간은 경사가 급한 곳이라 돌이 두 배로 들어가고 길이도 두 배로 길었다. 부지런한 세렉스가 돌을 하루 종일 날랐다. 부려놓은 돌이 앞마당과 주차장 사이에서 작은 지리산을 만들었고 발 딛기 조차 어렵게 되었다. 갑자기 심난해졌다. 괜히 과욕을 부렸다고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 상황에도 신이 난 건 우리 집 고양이들이었다. 수리와 모시는 돌산 위로 휙휙 날아다니며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는데 즐거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포크레인이 올라와 마구 부려놓은 돌을 하나씩 정리하며 작업 공간을 확보하고 진도를 나갔다. 일은 더 이상 용도가 없어진 정자를 철거하는 작업부터 시작되었다. 이 정자는 이십년 전 고향 친구가 만들어 준 건데 그동안 고맙게 잘 사용했지만 차가 다니는데 거치적거렸다. 그리고 이십년 전 땀 흘리며 하나하나 쌓은 돌담도 모두 무너뜨렸다. 정자도 돌담도 아까웠지만 새로 확장되는 공간에 디자인 펜스를 세우고 덩굴장미를 올리는 상상을 하며 애써 마음을 달랬다. 나흘 만에 끝이 보였는데 솜씨 좋은 포크레인 기사가 일을 마무리하며 주차장 진입로에 조경을 조금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좋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일은 상당히 만만찮은 작업이었다.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나는 조경을 그냥 돌 몇 개 쌓는 간단한 마무리 작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세렉스가 또다시 부지런히 자연석을 싣고 왔고 조경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축대 쌓기가 시작되었다. 이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창의적인 기사는 돌을 이리저리 돌려서 놓았다가 뺐다가 하며 미학적으로 가장 좋은 퍼즐을 찾아내면서 사흘간 예술 혼을 불살랐다. 시작은 사소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하고 가볍게 시작한 토목공사가 일을 키우며 심각해졌고 조경으로 마무리하며 혼란스러웠다. 일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이 일로 한 사람이 가난해지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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