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살아온 과정을 살펴보면 원시시대에는 혈연을 중심으로 한 집단생활을 했다. 점차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로 발전하면서 부족 단위를 넘어선 ‘국가’로 발전한다. 초기의 국가는 권력의 중심이 왕이었지만,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지나면서 그 중심이 시민에게로 이양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민주주의의 등장과 함께 가장 주목받은 것은 “선거권”인 “투표”이다. 투표는 나에게 주어진 권리-자유를 지지하는 후보에게 양도하는 행위와 같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민주주의와 의회정치가 형성되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과학의 발달로 속도(시간)의 혁명을 이루고 있다. 사람과 물건이 이동하는 속도, 정보가 이동하는 속도 등. 지금 이 시대는 지구 어느 편에 있든지 인터넷만 연결되면 바로 얼굴을 볼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속도의 변화가 가져온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 속도의 변화를 통해 “권리-자유”의 문제가 더욱 분명하게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에서 본 것처럼 우리는 투표를 통해 양도한 ‘나의 권리-자유’를 대표에게 양도했다. 그러나 양도한 이 권리-자유가 투표자 개인의 요구와 생각이 바르게 반영되는지 안 되는지를 바로바로 알 수 있고, 반응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정보의 속도로 인해 국민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한다. 이것이 정치의 생리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암묵적으로 권리-자유를 위임한 곳이 있다. 그것은 기관, 또는 직업으로 대변되는 ‘전문집단’이라 표현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모든 것을 개인이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전문성을 가진 집단이 등장했고, 개인은 이런 전문집단의 정보를 신뢰하고 수용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정보 속도의 발달로 이 전문집단과 개인 사이의 정보 격차가 무너지고 있다. 또 그 지식의 양과 질도 무너지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고 전문집단이 당장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 국민들은 전문 집단에게 암묵적으로 위임했던 권리-자유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법은 조직과 조직, 조직과 개인, 개인과 개인이 함께 살기위해 지켜야 할 약속이다. 약속인 법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수가 법 전문가들도 다 알지 못할 정도이다. 왜 이렇게 많은 법이 생길까? 그 이유는 우리 사회에 ‘권리-자유’와 ‘책임-의무’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대에는 관습법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문법을 중심으로 모든 사회가 돌아간다. 이유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권리-자유’와 ‘책임-의무’를 생각하는 기준이 사람마다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불균형은 분쟁을 낳았고, 사회는 성문법의 강화로 그 균형을 잡으려고 했다. 필자는 우리 시대에 등장할 새로운 문제를 ‘권리-자유’라고 말했다. ‘권리-자유’는 동전과 같아서 그 뒷면에는 ‘책임-의무’가 있다. 이 두 가지가 분리되는 순간 그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권리-자유를 위임받은 개인과 집단에게는 반드시 책임-의무가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사회는 자신들의 권리-자유만 주장할 뿐, 책임-의무를 말하지 않는다. 책임이 사라진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사회는 정글과 같은 사회이다. 즉, 힘의 원리만 작동하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리-자유, 국회의원의 권리-자유, 공무원의 권리-자유, 기업의 권리-자유, 언론의 권리-자유, 종교의 권리-자유, 노동자의 권리-자유, 개인의 권리-자유 등. 지금 우리 사회는 수많은 권리-자유와 책임과 의무가 분리 되어 서로 충돌하고 있다. 문제는 권리-자유는 주장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책임-의무를 말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늘어나는 것은 약자들의 피해와 충돌과 갈등을 피하기 위한 법 조항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권리-자유’를 말하기 전 자신에게 지워진 ‘책임-의무’는 무엇인지 돌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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