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이 멸망했다. 대통령이었던 아슈라프 가니는 막대한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그것도 모두 헬기에 싣지 못해 활주로에 버리고 도망쳤다. 아프가니스탄은 이제 파슈툰족 우월주의와 이슬람 극단주의를 이념으로 삼은 탈레반에 의해 통치되게 되었다. 크리켓 경기장은 정부에 협조했거나, 미군에게 협조한 혹은 협조한 것으로 추측되는 민간인들을 사형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이 모두 탈레반에 손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판지시르는 남았다.
아프가니스탄의 북동부에 위치한 판지시르는 소련-아프간 전쟁의 영웅이자, 탈레반을 상대로 아프가니스탄을 정의를 위해 지키려고 노력했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본거지였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난 타지크족으로,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왔을 때, 자신의 국가를 지키기 위해 자원하여 무자헤딘(이슬람에서 말하는 성전사)이 되어 게릴라전을 펼쳤다. 그는 지휘관이었음에도 직접 전투에 나서며 소련군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냈다. 그리고 소련군은 물러갔다. 하지만 무자헤딘들끼리의 내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파슈툰족 출신으로, 서방의 지원을 가장 많이 받았던 굴부딘 헤크마티아르의 군대가 마수드의 군대를 포함하여, 다른 무자헤딘들을 향해 총구를 돌리기 시작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타지크족 출신 부르하누딘 라바니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라바니는 헤크마티아르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그에게 총리직을 제안했다. 하지만 헤크마티아르는 이를 거절하고 내전을 일으켰다. 이 당시, 마수드는 라바니의 편에 서, 헤크마티아르의 군대를 격파해 나갔다. 하지만 이러한 내전중, 자신들이 이 내전을 끝내고 아프가니스탄을 정통성 있는 이슬람 국가로 만들어 내겠다고 주장하며 등장한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탈레반이다. 이에 마수드는 아프가니스탄의 주류가 아닌 민족의 군벌들, 그리고 반 탈레반 성향의 파슈툰족 군벌과 연합하여 북부동맹을 세웠다. 이후 탈레반과의 전투에서 마수드는 판지시르를 거점으로 삼아 적들을 전술로 격파해 나갔다. 하지만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탈레반과 연합한 중동의 테러단체 알 카에다 소속의 테러범들에 의해 사망하게 되었다. 그의 별명은 판지시르의 사자였다.
하지만 필자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본거지였던 판지시르는 아직 탈레반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 아흐마드 마수드가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계속하여 반 탈레반을 외치며 아프가니스탄 정계에 입문하였다. 하지만 탈레반의 총공세가 시작되자, 그는 판지시르로 돌아가 탈레반을 막아내기 위한 군인이 되었다. 현재 그는 탈레반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이 판지시르로 와, 탈레반으로부터 아프가니스탄을 보호하고, 자유를 되찾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에 암룰라 살레 부통령을 포함하여 대통령을 따라 타국으로 망명하지 않은 정부인사들이 속속히 판지시르로 모여들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쉬운 싸움은 절대 되지 않을 것이다. 탈레반의 세 또한 불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자유와 국민의 주권을 얻어내는 개혁을 젊은 판지시르의 사자가 해내길 바랄 뿐이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