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한 번쯤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조조라는 인물에 대해서 관심이나 흥미를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카리스마와 냉철함으로 무장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계산적이게 움직이는 조조의 모습은 여러 사람들의 환상에 부응하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대부분 연의라는 ‘소설’에서 흥미를 위해 각색한 ‘최종 보스’ 조조의 이미지를 보고 얻는 경우가 많다. 조조에게 흥미와 경탄을 느끼고, 그의 리더십이나 용인술에 홀리는 것은 이상한 위처럼 연의의 경로를 따라 삼국지를 본다면 이상한 전개는 아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의 조조가 지금의 현실에서 리더의 위치에 서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영향력을 가진다면 조조를 유능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많은 이들이 그 유능한, 혹은 무능할 수 있는 일처리에 의해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해 보려 한다. 우선 대다수 민중들이 가지는 조조의 이미지부터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 보자. 조조는 실제 역사에서의 행적을 보면 냉정함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음을 파악하면 많은 것이 다르게 보인다. 대표적으로 서주 대학살을 들어보면 이 사건은 조조 옹호론자들에 의해서 ‘초토화 전술’이라는 이름으로 노림수를 가진 군사작전으로 포장되는데 실상은 영 딴판이다. 우선 당시 조조가 서주를 공격한 이유는 자신의 아버지가 서주목(서주의 도지사) 도겸의 세력에게 죽어서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정설이고, 그게 제대로 되지 않자 화풀이를 할 다른 대상으로 민간인들을 선정해 수십만에 달하는 일반 백성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다는 견해가 대부분이다. 애당초 이런 학살이 전술일 수가 없는 것이 어차피 조조의 목표는 천하 평정이었다. 그렇다면 민심을 얻는 것이 필수 요소일 텐데 민심이 백성이 아니면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를 고려하면 조조의 학살, 그것도 기록에 따르면 2번 연속으로 저지른 이 서주 대학살은 조조라는 인간이 감정에 휘둘려 상상을 초월하는, 심신미약은 인정되지도 않을 악행이자 제노사이드 그 자체였다. 다음으로는 완 전투가 있는데 최대한 축약하고 돌려서 말하면 조조가 항복한 장수(참고로 항복한 장수 이름이 장수다.)의 숙모를 취하려 했다가 친위대장을 습격으로 잃고 죽을 뻔 하다가 자신에게 말을 양보한 맏아들의 희생으로 겨우 살아나고 본진으로 돌아가서 아들 잃고 화내는 본처를 친정으로 내쫓은(머리 좀 식히라는 의미긴 했지만...) 후 그 아내가 이혼 선포하자 미안하다며 애걸복걸하다가 결국 파경에 이른 사건이다. 돌려서 말한 게 맞음을 밝히며 이 일은 윤리 의식이 현재보다 낮았던 고대에도 길이길이 비판받은 행동인 것도 알리겠다. 그리고 자세히 말 안 해도 알 만한 여백사 사건이나, 항복한 적 병사(원소군) 수만 명 생매장 말도 안 되는 OX퀴즈로 관리들을 몰살 시킨 것 등을 고려해봤을 때 조조는 매우 감정적이었고 동시에 그 감정을 이용한 계산에 능했기에 탄복할 만한 업적과 치를 떨 만한 악행을 모두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실책과 악행을 반복했음에도 천하의 가장 큰 세력을 이룬 조조의 능력 자체는 뛰어났음이 틀림없기에, 천하통일이라는 대업을 향한 길은 어그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유비라는 시대를 초월한 숙적이 없었다면, 그 끝을 볼 수도 있겠다 라고 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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