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무색하게 덥더니 말복이 무색하게 시원하다. 어제 밤엔 자다가 깨어 창을 모두 닫았다. 기다리던 비도 내렸다. 그동안 많이 가물었기에 내린 비가 흡족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주에 또 올 거라고 하니 기다려본다. 골프 공 만큼 커진 감은 이번 비로 좀 더 굵어질 것이다. 정보화농업인 단체에서 온라인 농산물 마케팅 활성화 경진대회를 하는데 함양정보화농업인 대표선수(?)로 선발(?)되어, 그동안 활동했던 온라인 마케팅 자료를 정리하고 제출했다. 기왕 선수로 출전하게 되었으니 메달을 따면 좋겠지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또 열심히 만들었기에 도쿄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한 여자배구처럼 메달을 따지 못해도 유감은 없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는데, 입추가 무색하게 덥고 말복이 무색하게 시원한 날씨를 보는 듯 했다. 곶감 농사는 변덕스런 날씨처럼 예측 불허였다. 애써 만든 곶감 판매는 결코 생각처럼 순조롭지 않았다. 농사짓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판로 확보다. 안정적인 판로가 없으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남 좋은 일만 시키게 된다. 판로만 있으면 농사는 일도 아니라고들 하는데 판로 확보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귀농 첫해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20년 전이었고 그때는 홈페이지가 많지 않았을 때라 포털에 등록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홈페이지는 전문가가 만든 것이 아니고 아내가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공유 툴을 이용해서 뚝딱 만든 것이었는데 그 때는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글을 올리는 방식도 HTML로 이미지 소스를 하나하나 등록하는, 지금 생각하면 참말로 원시적(?)인 방식이었지만 그 때는 그것도 신기하고 재밌었다.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것들이 계속 나타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홈페이지는 계륵이 되고 말았다. 홈페이지가 보편화되고 효과가 점점 떨어질 무렵 네이버와 다음에서 카페가 등장했다. 나는 잠재 고객이 많은 카페에 가입해서 소통하고 농산물이 나올 때 장터코너에서 판매하였는데 이것도 초창기에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차츰 보편화되고 경쟁자가 많이 생기니 새로운 판로 확보가 절실했다. 그때 SNS라는 것이 구세주처럼 나타났고 나는 즉시 충실한 신도가 되었다.카페도 재밌었지만 카카오스토리 채널같은 SNS는 더 재밌다. 카페는 운영자가 따로 있기에 나는 어디까지나 객일 뿐이지만, SNS는 내가 주도적으로 온라인 친구를 초대할 수 있는 살롱같은 것이라 매일 영농일기를 올리며 친구를 초대하고 소통했다. 카카오스토리 채널 외 페이스북, 밴드 등 다양한 온라인 공간에서도 좋은 사람들과 소통을 늘리면서 자연스레 농산물 판로가 확보되었다. 나는 이 좋은 사람들을 친구라고 쓰고 고객이라고 읽는다. SNS 마케팅은 재밌는 만큼 성과가 있었다. 매출이 계속 상승했고 온라인 친구랑 소통하며 쓴 영농일기는 운 좋게도 책으로 출판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다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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