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일이다. 날씨와 일손 부족으로 수확한 양파를 꺼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다. 젊은 교인 몇 명이 마음을 모아 몇 시간 일을 해 준 적이 있었다. 일명 ‘까대기’ 작업이었다. 밭에 늘어선 양파 자루를 트럭에 싣고, 도로 한쪽에 마련된 곳에 쌓았다. 전날 온 비 때문에 습도가 높은 후텁지근한 날씨로 인해, 한 트럭을 실어 날랐는데 사람들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 바탕 웃으며 일을 했다. 밭에 늘어선 양파 자루가 점점 줄어들수록, 우리의 힘도 점점 바닥이 나면서 지쳐갔다.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물을 마시고 쉬는데, 어떤 분이 우리를 보고 한 마디 하셨다. “어! 국산이내!”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우리는 서로 쳐다봤다. 잠시 후 다시 들려오는 말은 “요즘, 국산은 이런 일 안하는데!”하면서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그제야 그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웃음이 나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분의 말이 거슬렸다. 먼저는 사람을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 취급을 하면서, ‘국산’이니 ‘외국산’이니 하는 식의 비인격적이고 차별적인 말 때문이었다. 둘째는 행색과 외모, 그리고 일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그 시선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일 중에 하나가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주변의 사람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잠시 한국에 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그렇게 무시 받아야 할 대상인가? 결코 아니다. 비록 국적이 다르고, 피부색이 달라도 그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정당한 노동으로 부족한 농촌의 일손을 도와주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사람들이다. 올해 양파 농사를 지은 분들은 모두 경험했다. 일손이 부족해서 마음을 졸여야 했다. 이런 마음을 달래 준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에서 오신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이 외국에서 왔기 때문에, 또 힘쓰는 막 노동을 하기 때문에 무시 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우리나라에도 아픔의 시간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야 했고, 1963~77년까지 정부는 정책적으로 광부와 간호사를 독일에 파견했다. 이후 중동에도 근로자를 파견했다. 4·50년 전까지도 우리나라는 외국에 노동력을 수출해서 먹고 살아야 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외국에 근로자로 다녀오신 분들의 이야기는 정말 눈물 없이 듣지 못하는 이야기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편안은 이런 선배들의 땀과 눈물이 씨앗이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떤가? 우리의 아버지, 삼촌들이 말도 통하지 않는 낮선 땅에서 흘려야 했던 눈물과 땀을 잊어버렸다. 그러면서 우리 앞에 있는 외국인들을 무시와 인격적 비하로 이들이 흘리는 땀방울 위에, 눈물의 무게를 더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무례한 행동과 말은 외국인 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약자를 향해 던지고 있다. 상대의 모습이 자신보다 좀 못하다고 생각되면 그를 낮춰보고 무시한다. 이런 무례와 비하의 문제는 외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다. 필자는 꿈꾼다. 남녀노소, 출신, 피부색을 넘어,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받고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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