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한 사람이 멋진 손목시계 하나를 주웠습니다. 이 시계가 왜 바닷가에 있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추리(推理)해 갑니다. “바위가 자갈이 되고, 그 자갈이 모래가 되고, 모래는 흙이 되었지, 흙속에 있는 철분이 모여 쇠붙이가 된게 분명해, 이것이 자연의 이치거든,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그 쇠붙이는 우연히 쪼개어져서 톱니바퀴가 되었고, 용수철이 되었을 거야, 또 세월이 지나니 우연히 조립되어 시계가 나왔고, 또 우연히 이 모래사장에서 내게 발견하게 된 거야!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야! 정말 멋진 일이야!!” 여러분들은 이 추리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솜씨 좋은 기술자가 온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쏟아 부어서 이 멋진 시계를 설계하고, 쇠붙이를 갈고 닦아서 톱니바퀴, 용수철, 긴 바늘, 짧은 바늘을 만들고, 설계도에 있는 대로 섬세하게 조립해서 나온 것이 손목시계라는 설명이 좀 더 호소력을 가질 것입니다. 작은 손목시계를 보면서 아주 정교한 기술자의 솜씨를 우리는 보게 됩니다. 1분 60초, 1시간 60분, 24시간을 정확하게 측량해 내는데 1,000개에 달하는 부품들이 각각 자기위치에서 자기역할을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우주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시사철 별들의 움직임은 조화롭습니다. 물은 항상 낮은 곳을 향하여 흘러가고자 합니다. 구름은 땅에 내려앉기보다 항상 하늘에 오르려고 합니다. 조화롭습니다.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이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부조화스럽고 불합리한 일들이 발견됩니다. 누군가는 태어나면서부터 불편하게 태어납니다. 또 누군가는 뜻하지 않은 질병에 노출되고, 하루아침에 폭풍과 해일이 밀려와 모든 것을 빼앗아 갑니다. 얼마 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에미 데이드카운티에서는 밤잠을 자는 사이에 아파트가 무너져 순식간에 행복이 공포와 눈물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보면서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내년 2022년 우리사회는 최저임금이 시급 9,160원으로 정해졌습니다. 노사(勞使) 모두 반발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측은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라고 주장했고, 사용자측은 “영세중소기업, 소상공인의 지불능력을 명백히 초월한 수준”이라고 주장합니다. 경제논리가 아닌 사회안전망을 살피는 주장과 정책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조화 속에 부조화가, 부조화 속에 조화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조화와 부조화는 새로운 사회로 나가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도 완벽하지도 완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동시대(同時代)를 살아가는 우리는 정부와 지자체, 사회와 종교, 교육과 문화를 통해 허울 좋은 미사여구가 아닌 실제적인 “삶의 가치”를 세워가는 선진국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치적(治績)과 공적(功績)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아픈 곳, 어두운 곳, 눈물이 있는 곳을 돌아보며 품을 수 있는 사회가 조화로운 사회일 것입니다. 무더위 속에 얼음냉수 한 잔 같은 조화가 그립습니다. 이런 부조화(不調和) 속에서 조화(調和)를 만들어가는 함양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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