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하늘이 짓는다고 한다. 농사짓는데 날씨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다. 나도 이천평 과수원에 감 농사를 짓고 있기에 날씨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지난해에는 전국 감 작황이 평년의 30% 수준으로 부진했다. 전국적으로 봄에 핀 감꽃이 냉해를 입어 열매가 별로 달리지 않은데다가 여름 장마가 거짓말처럼 두 달이나 이어졌다. 해서 가을에 수확할 감이 별로 없다보니 감 가격은 두 배로 올랐고 곶감 농가들은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곶감 농사는 하늘과 동업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감을 깎아 덕장에 걸어만 놓으면 동업자님께서 다 알아서 달콤한 곶감을 만들어 주셨다. 곶감의 원리는 간단하다. 감은 기온 변화에 따라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며 떫은맛이 없어지고 당도가 올라간다. 사흘 춥고 나흘 따뜻한 삼한사온 날씨가 달콤한 곶감을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온난화로 이제는 겨울날씨가 더 이상 삼한사온이 아니고 삼우사미다. 사흘 비 오고 나흘 미세먼지 날리면 옛날처럼 동업자를 믿고 곶감을 말릴 수가 없다. 사전 통보도 없이 수시로 변덕을 부리는 동업자 때문에 곶감농부들은 우왕좌왕하고 한숨짓는다. “다 하늘이 하는 일인데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어~” 하며 체념한다. 십여년 전 겨울부터 동업자가 노골적으로 배신했던(사실은 우리가 먼저 배신했다) 걸로 기억한다. 감을 말리기 시작하는 11월에 겨울 장마가 오더니 매해 같은 현상이 반복되었다. 감을 깎아 매달았는데 열흘쯤 비가 이어지면 감은 모두 바닥에 떨어진다. 시큼한 홍시가 되어 소똥처럼 바닥에 붙어 버린다. 곶감 농가는 피해를 감당하기 힘들었고 어떤 농부는 하늘을 원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나도 한때는 하늘과 동업했지만 이제는 끊었다. 그렇다고 아예 등을 진 것은 아니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계승했다. (문제인 대통령과 일본의 스가 총리도 지리산농부를 벤치마킹하여 관계를 개선했으면 좋겠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곶감 말리는 일은 이제는 더 이상 농사가 아니고 과학이다. 곶감의 원리를 이해하고 상황에 맞춰 이동이 가능한 방법으로 말리니 굳이 삼한사온이 아니더라도 예전의 동업자 도움으로 만들던 곶감보다 더 위생적이고 당도도 획기적으로 높은 고품질 곶감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이 처음엔 쉽지 않았다. 곶감은 덕장에 항상 매달려 있어야 된다는 그 고정관념 말이다. 물론 이 방법은 돈이 들어간다. 설비가 추가되어야 하고 경험이 있어야 하고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가능하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나는 곶감농사 이십년 하며 이것을 하나씩 모으게 되었고 이젠 다른 건 몰라도 곶감 하나는 잘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나만 잘 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 언젠가 겨울에 열흘 장마 이어져 전국 곶감 대부분이 곰팡이 피었을 때 나는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판매가 순조롭지 않았다. 뉴스에서 피해 보도가 이어지니 내가 말린 곶감은 좋아요~괜찮아요~ 맛있어요~ 곰팡이 없어요~ 엄청 달아요~하고 떠들었지만 소용없었다. 그해는 다들 워낙 그랬으니까.<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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