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를 잘 모르는 사람도 좌청룡우백호라는 말은 알 것이다. 황석산의 정기가 그대로 마을을 관통하고 좌청룡우백호가 뻗어서 감싸주는 중심에 앉은 안의면 황대마을. 우씨와 백씨의 집성촌이던 이 마을은 예부터 지금까지 많은 인재를 배출해왔다. 안의면 황대마을은 역사와 전통, 문화가 집결돼 있다 해도 손색이 없다. 활산당 성수 스님 부도와 비가 조성돼 있는 황대선원, 대한제국의 마지막 두 황제 고종과 순종을 모신 ‘이제묘’가 있는 국사문화원도 이 마을에 있다. 정유재란 때 8만의 일본군에 맞서 7천명 민초들의 희생이 담긴 치열했던 황석산성 전투에도 마을의 역사가 함께 했다. “하도훈 대한황실진흥원 교육연수원장이 국사문화원으로 이제묘를 옮겨왔지요. 입적하신 성수 스님의 성지순례로 황대선원을 찾는 이가 많습니다. 황석산성 전투 때 마을에서 한과를 만들어 간식으로 보급했는데 겨울에 황대선원에서 산삼한과를 만들어 판매합니다” 황대마을의 역사를 스토리텔링하여 고향의 부흥에 열정을 쏟고 있는 백인종(66) 이장의 말이다. 백인종 이장은 영어교사로 퇴직한 교육학 박사로 9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37가구의 이장을 맡은 지 올해로 6년째. 그는 고향마을에서 ‘일 벌이는 이장’으로 평판이 나있다. 그도 그럴 것이 황대마을은 지금 새단장이 한창이다. 백인종 이장이 직접 발표하여 5억짜리 마을담장공사를 따냈다. 공모사업에 선정돼 우물복원사업도 진행 중이다. “우리 마을에 우물이 3개 있는데 그 물을 먹고 암환자와 나환자가 나았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우물복원사업이 마무리되고 담장공사가 끝나면 이곳은 꽤 괜찮은 마을이 돼 있을 것이다”고 자신했다. 달빛 아름다운 황대마을의 밤은 마을회관 벽화로 그려놓았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영상학과 교수인 제자에게 품을 팔아 마을 풍경을 드론에 담을 계획이다. 황대마을 출신 향우들도 초대하여 축제를 열 계획이다. 그때쯤 전국에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가 보고 싶은 마을’로 황대마을을 떠올리지 않을까. 집 한 채 짓는데도 챙겨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닐진대 마을 곳곳의 공사현장을 쫓아다니려니 백 이장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그가 공을 들이는 활동이 ‘안의실버색소폰동호회’. 15명의 회원이 십시일반 모아 안의면에 100만원의 성금을 기부하기도 했으며 함양 관내 요양원을 다니며 봉사활동도 펼쳤다. 농월정, 용추사에서 버스킹도 하고 최근에는 코로나로 지친 어르신을 위해 작은음악회도 열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연습하고 합주한 시간이 쌓인 결실이다. 이들의 활동기록은 2015년부터 지금까지 빼곡히 스크랩 되어 있다. “색소폰은 제가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면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11년 정도 됐죠. 가르치는 직업이었으니 회원들을 지도해 주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은 강사를 초빙해 배우기도 했죠. 회원들도 무대의상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서서 공연하고 봉사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며 좋아해요” 황대마을이라는 넓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백 이장의 작품은 아직 미완성이다. 마을입구 쓰레기더미를 꽃동산으로 만들고 마을보호수 아래를 쉼터로 꾸며놓았다. 귀촌을 준비 중인 대학교수와 마음이 맞아 이곳에 도자기체험장도 생기면 황대마을은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가 있는 마을이 된다. 남자의 로망이라는 바이크에 몸을 싣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백인종 이장을 따라 황대마을 체험에 나서는 상상을 해 보자. 마을입구 넓은 공터에 차를 세우고 꽃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 예쁜 담벼락이 마중을 나와 있다. 담장을 따라 마을을 구경하고 황대선원, 국사문화원에서 우리나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배워보자. 아이들과 함께라면 도자기체험장에서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작품을 만들 기회도 가져보자. 마을 우물가에 앉아 잠시 쉬어도 보자. 어느덧 도착한 마을회관에서 따뜻한 차 한 잔과 한과로 배를 채우고 팔각정에 서서 밤 풍경이 담긴 벽화를 감상해도 좋다. 어르신들이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을 사서 손을 무겁게 하여 황대마을의 배웅을 받으며 일상으로 돌아가자. 백인종 이장이 꿈꾸는 황대마을이 완성작으로 펼쳐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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