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서 猫(묘)한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꼬리가 낯선 고등어랑 대치하고 있다. 하얀 장갑을 낀 두 파이터는 한걸음이면 펀치를 날릴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허리를 활처럼 휘고 몸을 풍선처럼 부풀린 채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 위협적으로 하악하악 하다가 경쟁적으로 어디서 내는 소린지 가늠하기 어려운 고약한 소리를 내지른다. 고등어는 꼬리와 덩치가 비슷했는데 사타구니 방울은 더 커 보인다. 꼬리가 뭉툭한 것만 빼면 고등어도 나무랄 데 없는 멋쟁이 수컷이었다. 고등어가 꼿꼿이 세웠던 허리를 잔뜩 낮추고 펄쩍 뛰어오르며 앞발을 뻗어 꼬리의 얼굴을 내리 치고, 꼬리도 쇠낫 같은 두발을 마구 내지르며 반격해 서로 상처 입고 피가 뚝뚝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눈에 불꽃이 튀는 걸로 보아서는 혈전이 예상되었지만 다행히 행동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트럼프와 김정은처럼) 엄포만 주고받았다. 나는 중재자로 사랑이와 오디를 불렀다. 두 마리 양치기 개가 컹컹 짖으며 마당을 휘저으니 꼬리와 고등어가 돌담 아래로 황급히 피하는데 고등어는 감나무 위로 올라가고 꼬리는 그 아래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웃기게도 고등어가 감나무 높은 가지로 올라간 것이 아니고 꼬리가 폴짝 뛰면 쉽게 닿을 수 있는 높이에 웅크리고 있다. 이 어설픈 농성전의 관객으로 수리가 추가되었다. 나는 수리(부랄리스사우루스)에게 “재들 왜 싸우는 거야?” 하며 같이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 팽팽한 대치가 거짓말처럼 지루하게 이어졌다.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주먹다짐이 벌어질 것처럼 보이는데 왜 아무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 걸까? 감나무 위에서 아래에서 하악하악 서로 용맹을 주장하다가 이대로 한 해가 가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감나무 꽃이 떨어지고, 감이 빨갛게 홍시가 되고, 눈이 내려 덮힐 때까지 배고픈 대치는 이어짐. “야 고등어 임마~ 그만 포기하고 내려오시지~” “천만에~절대 그럴 수는 없지~ 꼬리 니가 먼저 꼬리를 내리기 전에 나는 한발자국도 못 움직여~”) 흥미를 잃은 나와 수리는 지루한 대치를 더 이상은 지켜보지 않았는데 해거름에 우연히 엔딩을 보게 되었다. 나무에서 내려온 고등어가 위협적인 소리를 크게 내지르더니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뒷걸음질 하다 후다닥 줄행랑을 놓았고 꼬리는 의기양양 쫒는 시늉만 하고 상황이 끝났다.처음부터 싸움과 휴전협상을 동시에 한 것 같은 이 猫한 싸움을 보니 꼬리는 타고난 협상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굳이 피를 흘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싸울 수 있지... 잘 했어... 꼬리야~)그러고 보니 같은 수컷인 서리는 가끔(자주) 얼굴에 피를 흘리며 나타나는데 꼬리는 얼굴에 흉터가 하나도 없다. 수컷들의 영역 싸움에서 서리는 혈전을 벌이고 꼬리는 협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좀 지루하기는 하지만 나는 꼬리의 방식이 좋아 보인다.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하지만 협상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는가? 상대방이 양보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기다려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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