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봉은 무려 해발 8,848m에 달하는 에베레스트 산이다. 세계 산악인들이 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산을 정복하기 위해 도전한다. 그 웅장한 크기와 높이 때문에 티베트어로 “초모룽마(Zhumulangma)”, “세계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불려 지며 만년설은 신비에 가까운 장관을 이룬다. 뿐만 아니라 대기권을 지나 산소가 희박한 성층권의 2/3지점까지 솟아 있다. 그러니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저(低)산소증을 극복해야 한다. 혹독한 추위와 맞서 싸워야 한다. 지형뿐만 아니라 날씨가 주는 극한의 고통과 맞서 싸우며 한걸음씩 올라가야 한다. 결국 산을 오르고 있지만 인간의 한계점에 서 있는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극한의 한계에서 자신을 해방시키고자 한다. 산악인들은 왜 자신의 목숨을 걸고 등반하려는 것일까? “세계 최고봉의 정복”이라는 방향과 목적을 가진다. 무엇보다 이런 방향과 목적은 내 행동을 결정해 준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해 준다. 만약 산을 등정(登頂)하다가 방향을 상실하고 목적을 상실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저 눈 덮인 산에서 혹독한 추위와 맞서 싸우다가 죽음을 맞게 된다. 이것이 전부다. 방향을 상실하면, 목적을 상실하면 내가 왜 산을 오르고 있는지, 왜 추위와 싸우고 있는지 그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에 한계점(limited)에 갇히고 만다. 세계 산악인들에게는 “자연을 정복하기 위하여 산에 오른다는 교만한 말을 하지 말라 단지 자신을 정복하기 위하여 오르는 것이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엇인가 이루고, 성취하고, 업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래서 돈을 벌고, 그래서 권력의 중심에 서고 싶어 하고,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하며 이런저런 행정력과 법을 정비하기도 한다. 현실이라는 한계점에서 해방(unlimited)을 향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목적은 사라지고 인간의 욕심과 탐욕이 자리 잡는다. 인생의 목적과 방향은 사라지고 법과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이권을 챙기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정보를 입수하여 권력과 힘을 악용한다. 결국 자기 자신만 기쁘게 하는 이기적인 삶으로 몰락하며 또 다시 한계점에 갇히고 만다.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별·마지막 수업」, 오 헨리(O`Henry)의 「마지막 잎새」,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 Ross)의 「인생수업」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해답을 준다. 해방(unlimited)을 향하고자 한다면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모든 것을 사랑하기 위한 첫 단추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연민(憐愍)을 가지면 가장 불쌍한 자가 된다. 반면,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는 법을 안다면 자부심(自負心)이 된다. 한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나를 해방시키는 바른 길이다. 일명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어떤 일에 실패하였다 하여 자신에 대해서 나쁘게 평가하지 않는다 한다. 다만 한계점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해방을 향하여 다시 몸부림치며 이끌어 갈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지리산을 향한다. 이곳에 우뚝 솟아 있는 지리산은 모든 사람들의 눈물과 고뇌를 조건 없이 받아 준다. 또한 골짜기 굽이굽이에서 매일매일 마주해야 하는 모든 이들의 한계를 해방시키고자 서 있는 어머니의 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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