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책을 안읽을까? 이 의구심은 평생 물러서지 않고 따라 다녔다. 정기구독하는 ‘인문잡지 한편’ 5호, <일>과 함께 책이름도 없는 <특별부록>이 따라왔다. 이 부록의 펴내는 글에서 “책 안 읽는 사람에게 논어를 팔려고 시도하는 마케터”에 눈이 머물자 비장함이 느껴졌다. ‘독서인구가 줄어들고 동영상이 지배하는 시대에도 활자를 찍고 책을 팔아서 이윤을 남겨야 하는’ 출판계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왜 책을 안 읽는 것일까. 의무교육을 받는 내내 학교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독서를 권장하는데 갈수록 독서를 외면하고 사람들의 손에는 책 대신 스마트폰이 쥐어진다. 정기구독하는 시사주간지의 ‘재구독’을 권하는 ‘간절한’ 문자에 고민없이 재구독 의사를 밝혔다. 오래전부터 지속된 신문구독도 여전하다. 몇주 전, ‘2020년12월35쇄’로 출판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부작 10권이 배송되었다. 나머지 2부는 출간되는 대로 주문해서 완독할 생각이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집 두 권과 ‘2021년3월83쇄’를 출간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도 최근 구매했다. 프루스트를 읽다가 자크 데리다를 읽고 시사주간지를 읽고 신문을 읽고 <인문잡지 한편>을 같이 읽는다. 페르난두 페소아도 같이 읽고 <인간실격>도 같이 읽는다. 여러 책을 함께 읽다보니 속도는 느리다. 책을 뭐하러 그렇게 많이 사느냐는 친구에게 “독서에 무슨 이유가 있겠냐, 읽어야 하기 때문에 읽는다”고 말한다. 신문은 관심있는 부분만 읽고, 주문한 책을 채 읽지 못하기도 한다. 시사주간지를 읽지도 않았는데 다음호를 받기도 한다. 중간에 정기구독을 중단하기도 하고, 이제 절대 책을 사지않겠다는 결심도 하지만 결국 이 다짐은 헛된 것이 되고 만다. 신문이나 시사주간지를 읽지 않으면 앞이 깜깜한 것 같고 좋은 책들을 읽지 않으면 정신이 낙후되는 듯해서 결국 다시 구독하고 틈틈 책을 사고 매일 읽는다. 다양한 텍스트에서 인간과 사회, 예술과 문화, 역사의 여러 문제들을 만난다. 독서는 세계를 보는 것이다. 미얀마와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복잡하게 얽힌 배경, 일론 머스크의 ‘화성 식민지화’의 야망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중국의 AI기술이 미국을 추월하자 발끈한 미국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미래의 세계와 인류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예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기계기술과 교육이란 무엇인지... 등, 텍스트를 통해 시야를 확장하고 사고思考를 가다듬는다. 프루스트의 장황한 비유와 길고 긴 문장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집중하는 것, 상식을 뛰어넘는 시구詩句와 행간의 사유, 트랜드와 이슈에 대한 논문류의 글을 읽는 즐거움은 독서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 독서는 내면을 풍부하게 하며 인간과 사회, 사물을 보는 시선을 다각도로 분산시켜 단순함을 배격하고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도록 삶에 대한 정리를 도운다. 영화 <철의 여인>에서 보여준 정치적으로 대립적인 양당의 설전은 우리나라 국회의 모습과 대비되었다. 서로를 공격하는 언어사용은 논리로 무장하고, 목소리의 강약은 있으나 고성은 없다. 정책에 대한 설전으로 공방하는 모습이 이상적이었다. 서로를 헐뜯기에 바쁜 우리나라 정치인의 민망한 언어사용과 대조를 이룬다. 서구영화의 대사가 철학적이며 일반인들이 정치와 문화에 대한 일가견을 논리정연하게 토로하는 저변에는 생활로 자리잡은 체계적인 독서가 있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은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함께 진행해야 한다. 독서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독서를 취미라고 하면 조롱을 받는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며 인간을 지탱하는 견고한 토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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