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봄에 장미를 세 그루 심었다. 신앙 강화의 주간에 지름신을 영접하고 충만한 마음으로 삽을 들었다. 배달된 묘목은 상태가 아주 좋았고 모두 사계성 덩굴장미여서 꽃으로 뒤덮힌 멋진 울타리가 그려졌다. 올해 꽃이 피었다. 주차장 옆 장미 아치에 자리 잡은 한 그루는 아직 몇 송이 피지 않았지만 아주 실한 가지를 쭉쭉 뻗어 올렸다. 매력적인 크림핑크색의 작은 꽃이 피는 이 덩굴장미는 이름 기억하기가 참 어렵다. 이름표를 볼 때는 ‘멋진 이름이야~’ 하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이번에는 꼭 쫌 기억하기를 바라며 번거롭지만 마당으로 나가서 이름을 보고 와 적어본다. 로얄바카라. 대형 아치용이라고 한다. 마침 대형 아치에 잘 심어져있어 기대가 크다. 또 한그루는 하루가재라는 이름의 일본덩굴 장미다. 강아지 울타리 옆에 심었는데 말썽꾸러기 오디가 자꾸 건드리는 바람에 가지가 몇 번 꺾여 자리를 잡는데 고생을 했다. 하루가재는 봄바람이라는 뜻으로 가시 없는 별난 장미다. 심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 제법 자라 꽃을 피우고 있어 살펴보니 가시가 전혀 안 보인다. 가시가 없다보니 강아지가 부담 없이 밟고 건드렸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장미에 가시가 없다니? 며칠 전 결혼기념일에 아내에게 장미 화환을 선물했는데 이 장미에도 신기하게 가시가 하나도 없었다. 아내는 가시가 없으니 장미는 아니고 장미를 닮은 다른 꽃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장미다. 화환용으로 개량된 가시 없는 장미일 것이다. 오늘 지인이 단톡방에 울타리를 가득 덮은 멋진 덩굴장미를 올렸는데 알고 보니 이것도 하루가재였다. 지난봄에 심었다니 나랑 같은 시기에 심은 건데 두배 세배로 풍성하게 잘 키웠다. 네임 태그를 보니 키가 6미터까지 자란다고 되어있다. 지금 기대고 있는 강아지 울타리는 기껏 일 미터 높이라 제대로 꽃을 보려면 울타리에 뭔가 보완을 해주어야겠다. 마지막 한그루는 실패다. 꽃이 한 송이 피고 끝이다. 사하라라는 덩굴장미인데 이 품종은 원래 꽃이 적게 피는 건가 하고 검색을 해보니 울타리 가득 풍성하게 꽃핀 사진이 많이 보였다. 지난봄에 심을 만한 자리를 찾지 못해 모과나무와 감나무 사이에 대충 심은 것이 원인이다. 튼튼한 지주목이라도 세워 편히 기댈 수 있게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심어만 놓고 너무 소홀했던 것이다. 장미는 바람에 뿌리가 계속 흔들리며 여태 자리도 잡지 못한 것이다. 정원 가꾸는데 장미만큼 쉬운 것도 없다. 장미는 한번 심어놓으면 매년 알아서 핀다. 거름을 많이 주면 꽃이 두 배로 핀다. (사랑아~오디야~ 고마워~) 그리고 요즘 장미는 대부분 사계성이어서 한번 피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 피고진다. 늦게까지 피는 것은 첫눈이 내릴 때까지 꽃을 보여준다. 이렇게 쉬운 장미도 기본에 충실해야지 대충 심어서는 안 된다. 장미뿐만이 아니고 사람도 그렇다. 어디에 자리 잡느냐에 따라 풍성한 꽃을 피우기도 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겨우 한 송이 피우고 말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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