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뻐꾸기가 운다. 뻐꾸기 울면 모든 새소리가 묻힌다. 뻐꾹뻐꾹하고 하늘 가득 울려 퍼지면 색색의 장미가 화답하여 피고 오디가 익어 떨어진다. 꾀꼬리는 맑고 고운 소리로 노래하고, 소쩍새는 소쩍소쩍 밤을 새워 시를 쓴다. 홀딱벗고새도 제법 매혹적인 리듬을 치지만 뻐꾸기가 울면 이 모든 소리는 묻힌다. 뻐꾸기는 야외 공연기획자다. 봄비 오거나 말거나 뻐꾸기 울면 음악회가 열린다. 장미도 핀다. 장미가 벌어지면 모든 꽃들이 진다. 큰꽃으아리는 이미 졌고 색색의 붓꽃들도 마침표를 찍고 있다. 이어지는 봄비에 작약은 큼직한 이파리를 뚝뚝 떨어뜨린다. 하지만 괜찮다. 아쉬울 거 없다. 장미가 피니 다 괜찮다. 오디도 떨어진다. 오디가 익으면 아침 식탁이 즐겁다. 뽕나무 아래 의자를 딛고 올라서서 오디를 한 그릇 가득 담는다. 싱싱한 오디를 드레싱하고 장미 이파리로 장식하면 향기로운 아침식사가 된다. 오디가 떨어지는 동안 과일은 좀 적게 사게 된다. 오디를 딸 때 흰옷이나 새 옷은 입지 않는 것이 좋다. 오디 물이 들면 잘 안 지워진다. 오디 먹으면 혓바닥이 까맣게 되었다가 차츰 핑크색이 된다. 문득 사십년 전 군복무시절 행군 대오에서 이탈하여 오디를 따먹고 나타난 병사가 생각난다. 전방 거점까지 완전군장하고 행군하는 도중에 일병 한 녀석이 슬그머니 대오를 이탈하더니 잠시 뒤 다시 나타났는데 오디를 따먹고 온 걸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야~임마~ 너 행군 중에 어디로 샜어?” 야단칠 필요도 없었다. 오디 먹고 시침때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십년 전 밭을 매다가 오디랑 노린재를 한 입에 털어 넣었던 슬픈 기억도 있다. 괭이질하다가 밭둑에 열린 오디를 한줌 털어 먹었는데 땀 흘리고 목이 말라 급히 먹느라 노린재를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노린재 맛이 얼마나 고약한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곤충계의 스컹크 노린재를 먹으면 사흘은 모든 음식 맛이 죽음이다. 맥주를 마시면 노린재표 맥주, 된장국을 먹어도 노린재표 된장국, 밥을 먹어도 노린재 밥, 적어도 사흘은 입안에 살아있다. 많이 기다리던 뻐꾸기가 올해는 좀 늦게 왔다. 반가운 뻐꾸기 소리가 어제 해거름에 잠깐 들리더니 오늘은 종일 공연이 이어진다. 뻐꾸기는 한 마리만 울어도 오케스트라처럼 울려 퍼진다. 꾀꼬리는 피콜로 연주자이고 딱따구리는 드럼 연주자다. 뻐꾸기는 호른연주자다. 새들은 모두 한 가지씩 악기를 연주한다. 하지만 뻐꾸기는 호른을 연주하면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바렌보임이 피아노를 치며 런던 필하모니를 지휘하는 것처럼 말이다. 가는 봄이 오는 여름과 손을 잡고 왈츠를 추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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