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덩굴장미 사진을 구경하다가 욕심이 나서 5그루를 덜컥 주문했다. 6~7년 쯤 전 일이다. 주문할 때는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아치를 감싸고 활짝 핀 장미는 정말 그림 같았다. 그런데 막상 묘목이 배달되고 심으려고 하니 적당한 자리가 안 보였다. 묘목을 심을 만한 자리에는 유감스럽게도 이미 다른 화초와 장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할 수없이 집 뒤 언덕에 일단 심어놓았다. 임시로 심는다고 생각했지만 빠른 시일에 옮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기에 혹시 그 자리에서라도 좋은 모습으로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책임한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장미는 배나무 그늘에서 억척같은 잡초 덤불과 싸우느라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다. 장미는 장미일 뿐 야생에서 스스로 세력을 키우는 찔레가 아니었다. 설상가상 언제부턴가 어디서 씨가 배달되었는지 주변에 찔레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장미인지 찔레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지난 해 강아지 울타리 한편에 새로 화단을 만들고 가엾은 장미를 구조해주었다. 이식 과정에서 세 그루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두 그루만 살았다. 그리고 한 그루는 새집을 짓고 이사한 이웃 화단에 심어주고 한 그루만 남게 되었다. 오랫동안 고생만 한 이 한 그루 장미가 뒷마당에 자리를 잡은 지 올해 두 해째다. 장미는 개똥이 나오는 대로 먹더니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100배로 덩치가 커졌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맞아 장미 화단에 거름을 공급해준 사랑이 오디 모녀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동안 똥 많이 싼다고 잔소리해서 많이 미안해~) 열악한 환경에서 대여섯 송이 겨우 피우던 장미가 올해는 백만 송이쯤 필 것 같아 보인다. 이미 호른 음색의 꽃이 피기 시작했는데 향기가 눈부시다. 세상에~ 나는 유월이 오기 전에 백만 송이 호른이 연주하는 협주곡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멋진 장미를 모르고 방치하다니... 그동안 전혀 궁금하지 않던 이름이 궁금해서 수소문해서 알아보았더니 독일 신품종 덩굴장미 알케미스트라고 한다. 알케미스트? 연금술사라고? 이름을 듣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쩜 이름도 정말 잘 지었구나~ 호른처럼 눈부시게 피는 알케미스트를 자세히 보면 왜 연금술사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게 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득 덩굴장미 알케미스트처럼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 또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관심을 가지고 이름을 불러주고 사랑을 주면 연금술사처럼 나를 기쁘게 해줄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맘 때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올해는 지각을 하는 건지 아직 듣지를 못했다. 뒷산에서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면 장미가 오렌지색으로 노란색으로 벌어졌는데 아직까지는 뻐꾸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직 때가 아닌가 싶어 지난해 이맘때 일기를 찾아보니 뻐꾸기 울음소리에 장미가 벌어지고 오디가 익어 떨어진다는 글이 보인다. 아침에 잘 익은 오디에 장미를 드레싱해서 먹은 사진도 보인다. 해마다 이맘 때 찾아오는 단골 파랑새 부부도 일찌감치 왔고 찌르레기 두 쌍은 곶감 덕장 처마 밑에 둥지를 틀었다. 해거름부터 늦은 밤까지 소쩍새도 울고 꾀꼬리 울음소리도 수시로 들린다. 오디는 내일이라도 익어 뚝뚝 떨어질 것 같은데 내일이면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기다리지 않아도 다 때가 되면 익을 것 익고 올 것 다 오겠지만 오늘따라 괜히 뻐꾸기 울음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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